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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광균) 정광균 신임 경문연 콘텐츠개발위원장 위촉. 경문연 2022 제1차 임원 워크숍 개최…임원 위촉 및 사업보고   지난 15일 오후 서울 서초구 양재동 aT센터 미래로 룸에서 개최된 한국경제문화연구원 2022 제1차 임원 워크숍에서 정광균 신임 콘텐츠개발위원장이 최세진 한국경제문화연구원 회장에게 위촉장을 받은 후 기념촬영 하고 있다.    ▲ (왼쪽부터) 정광균 신임 콘텐츠개발위원장과 최세진 한국경제문화연구원 회장  © 마진우 기자 이날 자문위원 호선으로 새롭게 위촉된 분과별 자문위원장은 △김규환 산업혁신위원장(대한민국 국가품질명장) △박항준 창의인재개발위원장(누림경제발전연구원장) △이강래 청소년사회교육위원장(사단법인 맥지청소년사회교육원 이사장) △이창현 글로벌비즈니스위원장(KOTRA 인천지원단 부단장) △정광균 콘텐츠개발위원장(주식회사 미르나인 대표이사) △탁계석 한류문화예술위원장(한국예술비평가회장)이다. 위촉기간은 2022년 3월부터 2023년 2월까지이며, 연임할 수 있다.
이세훈 2022-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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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계석) 탁계석 신임 경문연 한류문화예술위원장 위촉. 경문연 2022 제1차 임원 워크숍 개최…임원 위촉 및 사업보고   지난 15일 오후 서울 서초구 양재동 aT센터 미래로 룸에서 개최된 한국경제문화연구원 2022 제1차 임원 워크숍에서 탁계석 신임 한류문화예술위원장이 최세진 한국경제문화연구원 회장에게 위촉장을 받은 후 기념촬영 하고 있다.    ▲ (왼쪽부터) 탁계석 신임 한류문화예술위원장과 최세진 한국경제문화연구원 회장  © 마진우 기자 이날 자문위원 호선으로 새롭게 위촉된 분과별 자문위원장은 △김규환 산업혁신위원장(대한민국 국가품질명장) △박항준 창의인재개발위원장(누림경제발전연구원장) △이강래 청소년사회교육위원장(사단법인 맥지청소년사회교육원 이사장) △이창현 글로벌비즈니스위원장(KOTRA 인천지원단 부단장) △정광균 콘텐츠개발위원장(주식회사 미르나인 대표이사) △탁계석 한류문화예술위원장(한국예술비평가회장)이다. 위촉기간은 2022년 3월부터 2023년 2월까지이며, 연임할 수 있다.
이세훈 2022-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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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항준) 박항준 신임 경문연 창의인재개발위원장 위촉. 경문연 2022 제1차 임원 워크숍 개최…임원 위촉 및 사업보고   지난 15일 오후 서울 서초구 양재동 aT센터 미래로 룸에서 개최된 한국경제문화연구원 2022 제1차 임원 워크숍에서 박항준 신임 창의인재개발위원장이 최세진 한국경제문화연구원 회장에게 위촉장을 받은 후 기념촬영 하고 있다.    ▲ (왼쪽부터) 박항준 신임 창의인재개발위원장과 최세진 한국경제문화연구원 회장  © 마진우 기자 이날 자문위원 호선으로 새롭게 위촉된 분과별 자문위원장은 △김규환 산업혁신위원장(대한민국 국가품질명장) △박항준 창의인재개발위원장(누림경제발전연구원장) △이강래 청소년사회교육위원장(사단법인 맥지청소년사회교육원 이사장) △이창현 글로벌비즈니스위원장(KOTRA 인천지원단 부단장) △정광균 콘텐츠개발위원장(주식회사 미르나인 대표이사) △탁계석 한류문화예술위원장(한국예술비평가회장)이다. 위촉기간은 2022년 3월부터 2023년 2월까지이며, 연임할 수 있다.
이세훈 2022-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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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영) 전 해수부장관, '이주영의 진심' 출판기념회. 이주영 전 해수부장관, '이주영의 진심' 출판기념회   오는 25일(화) 경남 창원시 창원 컨벤션센터 700A에서 이주영 전 해양수산부장관의 저서 ‘이주영의 진심’ 출판기념회가 열린다.    ▲ 이주영 출판기념회 포스터 (사진제공=이주영 전장관 / 문화저널21 DB)   경남도지사 출마를 준비하는 이주영 전 해양수산부 장관의 이날 주 행사는 오후 3시 ‘경남을 청년하라!’ 북콘서트로 열리고, 이에 앞서 오전 10시부터 오후 3시까지 ‘저자와의 만남’ 책 사인회가 진행될 예정이다.   ‘이주영의 진심’은 기본적으로 회고록의 성격을 띠면서 이 전 장관의 경험과 경륜, 지식을 토대로 우리사회가 바람직하게 나아갈 방향에 대한 저자의 생각도 제언 형태로 녹아있어 정책 제안서의 성격도 갖고 있다.   이주영 전 장관은 "기회와 위기의 순간마다 저를 굳건히 지켜주신 소중한 분들을 생각하며, 잊지않고 오로지 나라를 위해 더 열심히 헌신하겠다" 면서 “코로나로 힘든 시기인지라 마음이 무겁지만, 소박한 자리이니 참석하시어 격려해 주시길 바란다”고 밝혔다.   ['이주영의 진심' 출판기념회]   ●1월25일(화) 오후3시 (본행사/북콘서트) ●저자사인회 오전10시 ~ 오후3시 ●창원 컨벤션센터 700A (창원시 성산구 원이대로 362)   문화저널21 박명섭 기자
이세훈 2022-0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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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철웅) 인터뷰, 탈북피아니스트 김철웅…‘같이 사는 세상 만들자’. 차이코프스키 국립음악원 졸업, 평양국립교향악단 수석 피아니스트 출신   탈북 피아니스트로 잘 알려진 김철웅. 그는 북한에서 당 간부인 아버지와 대학교수인 어머니, 백화점을 운영하신 할머니로부터 사랑받으며 유복하게 자랐다.    어려서부터 음악에 소질을 평가받아 여덟 살에 평양무용음악대학에 입학할 수 있었고, 러시아 차이코프스키 국립음악원 유학도 다녀온 재원이었으며, 이후 평양국립교향악단 수석 피아니스트로 이른바 잘 나가는 부류의 신분이었다.    ▲ 피아니스트 김철웅  © 박명섭 기자 그런 그가 탈북을 한 것에 많은 이들이 현재도 의문을 제기한다. 그의 탈북계기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청혼하려고 리차드클레이더만의 팝피아노곡을 연주한 것이 발단이다. 그 연주를 들은 누군가가 보위부에 신고를 한 것. 김철웅은 시말서 작성 외에 큰 처벌을 받지는 않았지만 회의를 느끼게 된다.    “마침 러시아 유학을 다녀 온 이후 마음의 안정이 되지 않았던 상태였다. 북한에서 외국을 나갔을 때와 외국에서 북한으로 돌아와서 바라보는 느낌이 달랐다. 약간 불편함을 느끼던 중에 그러한 일이 터지니까. 체제선전만을 위한 음악만 한다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하는 의문이 들면서 떠나야겠다는 생각을 하고는 실행에 옮겼다. 가족들과 한마디 상의도 없이 집에 있던 달러를 얼마간 훔쳐서 탈북을 했는데…사실 충동적인 탈북이었다.”   당시 남한으로 온다는 상상은 하지도 못했다. 그건 반역이라는 생각이 있었기도 하고 선생님과 친구들이 있는 러시아로 가려 했다. “압록강은 강폭이 넓기 때문에 두만강 상류를 탈출 루트로 정했다. 강폭이 아주 좁은 곳이라 건너가기 수월하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기 때문이다.”   탈북에 성공한 그는 중국 흑룡강성(黑龍江省, 헤이룽장성) 목단강(牡丹江, 무단장)인근에서 살게 됐는데, 그곳에사는 사람들은 그를 알아주거나 인정해주기는커녕, 피아노가 뭔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는 그 사람들과 함께 농사일도 하고 벌목공도 하면서 난생처음 갖은 고생을 하던 중, 교회를 가면 피아노가 있다는 말을 듣고 교회로 갔다.    “교회에서 생활하다보니 중국선교를 위해 방문하신 한국의 목사님들에게 소문이 났고, 그 소문이 국정원까지 들어갔던 것 같다. 그게 한국으로 오게 된 계기다. 나를 데려가기 위해 사람을 보냈는데 이 사람들이 일에 실수가 있어서 두 번이나 잡혔었다. 첫 번째는 중국 공안에 잡혀서 곤봉으로 맞기도 했는데, 내가 피아니스트다보니 혹시라도 손을 다치게 될까싶어 팔짱을 끼고 맞았다. 두 번째는 북한으로 연행이 돼서 국경지역의 보위부 사무실에서 조사를 받는데, 마침 총 책임자가 아버지 후배였다. 천운처럼 그분 덕분에 다른 사람 신분으로 나오게 됐고, 우여곡절 끝에 마침내 2002년 12월 7일 인천공항을 통해 한국으로 오게 됐다.”      29세에 한국 땅을 밟은 그는 처음엔 혼자 내려왔지만 3년 뒤 어머니를 모시고 왔다. 아버지는 그가 탈북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돌아가셨고, 동생이 한명 있었는데, 당시 군 생활 중이었고, 탈북을 거부했다고 한다. 이후 동생은 몇 년 전 탈북을 시도하다 중국에서 잡혀 다시 북송된 후 사망했다.         ‘탈북피아니스트’란 말이 싫었다…카네기홀 등 다수의 대형 해외공연    ▲ 김철웅 피아니스트  © 박명섭 기자 특이한 경력의 그가 한국에 정착하는 시기 다른 탈북자들보다 우대를 받은 게 있었는지 물었다. 그는 “경력이 특이하다고 해서 다른 탈북자들보다 좋은 대우를 받은 일은 없다. 모두 똑 같은 대우를 받는다. 다만, 사회에 나와서 어떠한 사람들을 만나는가가 중요한데, 좋은 분들을 만나다 보니 경력을 인정받고, 친분도 생겼다. 그런 부분에서는 감사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하나원을 졸업하고 홀로서기를 해야 할 때 정말 무서웠다. 전라도 경상도에서 서울로 올라왔다가 정착을 못하고 돌아가는 사람들도 많은데 하물며 탈북자들은 어떻겠냐”며 정착과정에서의 어려움을 털어놨다.    그는 ‘탈북피아니스트’란 말이 싫었다고 한다. 그것이 프리미엄으로 작용할 수 도 있겠지만 본인을 깍아 내리는 느낌이었다는 것이다.      “탈북자를 대하는 게 우호적이지도 않고 이미지도 그다지 좋지 않기에 탈북피아니스라고 부르지 말아달라고 요청도 많이 했었다. 그런데 김철웅 하면 모르는데, 탈북피아니스트 김철웅 그러면 안다. 그게 현실이니까 어쩔 수 없겠다 싶기도 하고…지금은 어쩔 수 없는 나의 정체성이니까 그런 것에 개의치 않는다.”   그는 “모두 그런 건 아니지만 양극화 돼 있는 정치현실 속에서 탈북자들은 어느 편으로 서려고도, 본인의 생각을 말하려고도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한국에서 20년 이상 살아보니까 이제 말을 좀 할 수 있다. 최소 10년은 지나야 그 사회를 이해할 수 있겠더라”고 덧붙였다.    한국에 온 후 지금까지 그는 연주활동을 하는데 큰 어려움은 없었고, 다수의 대학 연주 및 특강, 청와대와 대기업 등의 초청연주, 방송출연 대학 강의 등 활발한 활동을 펼쳐왔다. 그러나 최근 코로나로 인해 연주회가 취소되거나 설 수 있는 무대가 대폭 줄어든 상황은 현실적인 어려움 이다.    국내공연뿐 아니라 해외공연도 많이 했다. 2009년 4월 미국 뉴욕 카네기홀의 독주회를 비롯, 호주의 뮤직아카데미홀, 미 국무부, 일본 왕이 거처하는 '황거(皇居, 고쿄)' 등 다수의 해외공연을 하기도 했다.    탈북을 안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질문에 “2018년 한국에 온 삼지연관현악단 지휘자가 친구다. 그 정도 위치는 되지 않았을까 싶은데, 내가 워낙 자유로운 성격이다 보니 많이 튀었을 것이고 그것때문에 감옥을 갔을 수도 있었을 것 같다”면서 웃었다.    남·북의 좋은 가곡들 모아 ‘남북 가곡의 밤’콘서트 정기적으로 열고 싶어   ▲ 아트컨버전스콘서트에서 쇼팽의 녹턴을 연주하고 있는 김철웅 피아니스트 (문화저널21 DB) 김철웅은 지난해 12월 28일 진행된 2021 한국경제문화대상 시상식 2부행사로 열린 '아트컨버전스콘서트'에서 쇼팽의 녹턴 20번 피아노솔로를 연주했으며, 그의 연주로 소프라노 김은경이 북한가곡 ‘산으로바다로가자’를 열창해 큰 박수를 받기도 했다.    그는 북한 가곡에 대해 “‘임진강’, ‘산으로바다로가자’를 비롯해 자연을 노래한 곡들이 많고, 사랑을 주제로 한 곡들은 지도자를 칭송하는 정치적인 부분들이 많아 남한에서는 부를 수 없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남북의 좋은 가곡들을 모아서 ‘남북 가곡의 밤’콘서트를 정기적으로 열고 싶다고 말했다.   탈북자 입장에서 특별히 하고 싶은 말이 있느냐는 질문에 그는 “부모들과 같이 온 아이들에게 ‘탈북’이라는 부담을 없애주면 좋겠다. 학교엘 가면 친구들이 ‘너 때문에 군대를 가야돼’ 라고 한다는데, 너무 안타깝고 맘 아프다”면서 “선생님의 특별대우도 문제다. 숙제를 안 해갔는데, 다른 애들은 야단치면서 그 아이들에게는 뭐라고 하지 않는 경우가 있다는데 그것 또한 상처가 된다”고 강조했다.   대안학교를 만들어 이사장으로 활동하기도 했던 그는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일은 그 아이들과 남한의 아이들이 서로 같이 살 수 있는 세상이 뭔지를 알려주고 싶다. 바로 음악을 통해서다. 오케스트라는 서로 양보를 해야 사는 것처럼 그런 마음을 가르치고 싶다. 다음세대를 위한 그런 오케스트라를 만들고 싶다”고 힘주어 말했다.     문화저널21 박명섭 기자
이세훈 2022-0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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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계석) 인터뷰, 한국경제문화대상 문화부문 수상한 탁계석 음악평론가. 우리말이 세계를 휩쓰는 상품 자체 새벽 아이디어를 담아내는 천생 창작 작가   음악평론가로 시동을 걸고 달리다 가파른 시대가 다가오자 전문 작가의 페달을 밟으면서 칸타타 8개좌(座)를 섭렵한 K클래식의 거장. 탁계석. 양치기였던 ‘엘제아르 부피에’가 누런 황무지에 매일 도토리 100개씩을 심어나갔다. 도토리나무는 무서운 속도로 성장했고 1차 세계대전의 폭격 속에서도 부피에의 숲은 도토리나무는 물론 밤나무, 단풍나무 등 수백 종의 나무로 가득 찬 ‘환상의 숲’으로 천지를 덮었다.   ▲ 탁계석 음악평론가 (사진=K클래식 제공)   남프랑스 프로방스지방의 ‘환상의 숲’은 부피에가 심은 도토리 100개로부터 비롯되었다. K클래식의 거장 탁계석은 도토리 100개를 심는 부피에의 마음으로 외국어라는 돌밭을 걷어내고 칸타타에 우리말을 심기 시작했다. 그러나 부피에와는 다른 점이 있었다. 탁계석의 주제는 거대했다. 칸타타 ‘한강’이라는 제목으로 칸타타 대본을 써내려갔다.   ‘한강’(2011)으로 1좌를 찍은 그는 두 번째 좌 ‘송 오브 아리랑’(2013)으로부터, ‘조국의 혼’ ‘달의 춤’(2019), ‘동방의 빛’ ‘태동’(2020) 등을 거쳐 올해 들어 창작한 ‘코리아환타지’와 훈민정음에 이르기까지 8개 좌를 완봉했다. 지난 10여 년 동안 우리말 칸타타로 우리 민족의 자부심과 역사성을 일깨우는 지난한 작업을 펼쳐온 것이다.   지난 10월 한글날 즈음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린 국립합창단 공연 ‘훈민정음’을 감상한 이후 그는 왜 수많은 장르 중에서 칸타타를 통해 우리 음악의 우수성을 드러내려고 했을까 궁금했다. 왜 칸타타에 꽂혔을까?   마치 러시아 작곡가 글라주노프가 자신은 매일 성장하는게 아니라 매시간 성장한다고 하는 것처럼, 새벽 5시면 정좌해 머릿속을 채우는 영감을 활자화하면서부터 온 종일 밀려오는 아이디어를 주체하지 못한다는 탁계석을 만났다.   칸타타를 시작한 이유   ​“칸타타 15세기에서 16세기에 교회음악을 중심으로 성행했던 장르입니다. 바흐 시대에 전성을 이루었고요. 그런데 이 장르가 우리말과 궁합이 딱 맞습니다. 2010년쯤 임준희 작곡가가 교향시 한강을 발표한 적 있습니다. 멜로디도 좋지만 이 작품 안에 우리의 역사와 삶과 굴곡진 모든 것이 들어있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무릎을 쳤지요. 관현악보다 ‘칸타타’ 형식으로 표현하면 우리 근대사를 구체적으로 표현할 수 있겠다 싶었습니다. 다행히 임 작곡가도 동의할 뿐 아니라 세종문화회관 측에서도 적극 호응해주어 칸타타 한강이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한마디로 일사천리로 진행되었습니다.”   그렇다고 이때로부터 우리말 칸타타가 처음 탄생한 것은 아니다. 이전에도 분명 존재했다. 김성태, 윤용하, 장일남, 김동진 등 상당수 작곡가들의 작품이 존재했다. 그러나 선대 작곡가들이 작품을 창작했을 당시에는 한번 무대화된 이후 두 번 다시 빛을 보기 힘들었다. 재정적 여력이 없었기 때문이다. 다행히 작곡가 이건용과 이용규 등이 맥을 이어갔으나 이후 한참 동안 흐름이 끊겼다.   ▲ (좌) 음악평론가 탁계석 (우) 월간 리뷰 발행인 김종섭 (사진=문화저널21 DB)   “예산에 비해 효과가 미비하다고 판단해서인지 정부가 지원하는 65개 합창단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칸타타 양식을 계속 이어가지 못했던 거에요. 다행히 칸타타 한강을 올리고 난후 반응이 굉장히 좋았습니다.”   크로아상이 부풀어 오르는 것처럼 그 효과는 후속작품의 기폭제가 되었다. 아리랑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지정되자 국립합창단은 새로운 작품을 의뢰했다. 그렇게 탄생한 작품이 바로 ‘송 오브 아리랑’(Song of Arirang)이다.   우리말 칸타타가 붐을 일다   그런데 스페인밀레니엄합창단이 내한했을 때 이 작품을 우리말 그대로 부르면서 더욱 화제가 되었다. 우리말을 외국인이 불러도 한국인 못지 않게 정확하게 발음하자 전국 합창단들도 깜짝 놀란 것이다. 어찌보면 이 ‘사건’이 K클래식의 지평을 활짝 열어주었다고 볼 수 있다. 우리말 칸타타의 부활을 넘어 세계 시장으로 진출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엿본 것.   “우리말 칸타타가 제 때를 만난 것이에요. 이전에 칸타타 곡은 아무리 훌륭해도 보급과 전파에 한계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한번 공연으로도 유튜브나 페이스북 등과 같은 SNS 매개체로 수천배의 전파효과를 내고 있습니다.   영상이 회자되면서 여기저기에서 ‘칸타타’라는 말이 우리에게 익숙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던 중 2019년 우효원 작곡가와 오병희 작곡가가 국립합창단 전속 작곡가가 되면서 3.1절을 대표할 만한 칸타타를 작곡하게 되었죠. 톱니바퀴가 척척 맞는 것처럼 일이 진행되었습니다.”   이미 탁계석 평론가는 칸타타 한강과 송 오브 아리랑에서 검증이 된데다 그 두 작품이 SNS를 통해 널리 확산되고 있었다. 이런 기반을 토대로 도전, 탄생한 작품이 오병희 작곡 ‘조국의 혼’과 우효원 작곡 ‘달의 춤’이다. 말할 것도 없이 이 두 개의 작품의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다. 곰비임비 확산된 칸타타 붐은 3.1절 백 주년 기념으로 오병희 작곡의 동방의 빛을 발표하면서 다시 한번 폭발했다.   ▲ 창작칸타타 한강 공연모습 (문화저널21 DB) 대본작가로 성공하기까지   “그다음에 우효원 작곡의 태동이 탄생하고 이후, 8.15를 기념한 ‘코리아판타지’와 한글날의 뜻을 새긴 ‘훈민정음’이 마침내 세상에 나왔습니다. 지난 10월 예술의전당에서 올린 ‘훈민정음’은 그 어느 때보다 의미있는 작품입니다. 우리말 칸타타의 의미를 다시 한번 되새길 수 있는 우리말의 탄생과정과 우리말의 위대함을 다룬 내용이기 때문이죠. 이제 한글날에는 이 작품을 반드시 공연해야 할 시대가 올 것입니다.”   대한민국에는 소설사 시인, 대본작가 등 작가들이 수두룩하다. 그런데도 탁계석의 글에는 일반 작가들과는 달리 유장미가 흐른다. 젊은 작가들은 모방할 수 없는 시대정신과 혜안이 담겨있다. 그래서 작곡가들은 우선 탁 평론가의 글을 선호한다.   “대본은 일반 작가 개념과는 다릅니다. 음악을 만들어내는 그 안에 씨앗을 넣어야 하는데 그 작업은 작곡가와의 호흡이 대단히 중요하지요. 베르디에게는 피아베와 보이토가 있고, 모차르트에게는 다 폰테가 있어요. 푸치니에게는 일리카와 자코사가 있단 말입니다. 이들은 서로 호흡이 척척 맞아서 연타로 작품이 줄줄 탄생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는 서로 간 음악적 언어가 맞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에요. 물론 작가는 수만 명이 있죠. 하지만 음악을 제대로 알고 양식화할 수 있느냐는 다른 문제입니다.”   작곡가와 대본가는 음악의 동지가 되어야   맞다. 음악적 언어에 대한 이해가 통하는 작곡가와 대본가는 ‘보거상의’(輔車相依)의 덧방나무와 수레처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일지 모른다. 이처럼 창작의 길이 같다면 앞으로도 히말라야 14좌처럼 더 많은 창작곡을 출품할 텐데 탁계석은 일단 예서 멈추기로 했다. 마치 예전 소설가 김주영의 절필처럼…   “칸타타라는 건 시간도 많이 들고 비용도 많이 소요됩니다. 등반은 히말라야 14좌는 한번 오르고 내려오면 기록으로 남습니다. 그러나 작품은 탄생했다는 기록으로만 남을 수 없습니다. 출산만 하고 육아는 나몰라라 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우리 창작현실의 가장 큰 문제는 출산은 숱하게 하면서 육아는 책임지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육아란 지속적인 애정과 관심을 갖고 필요한 예산을 확보하는 활동을 해야 합니다. 공공의 지원은 한계가 있습니다. 특정 작품만 지원하면 형평성과 기회균등 면에서 문제가 발생하거든요. 그래서 공공의 지원을 떠나 자생적으로 확대 재생산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 일에 치중하고자 일단 멈춤을 하기도 했습니다. 세계의 음악사 기준을 봤을 때 우리의 창작 기술력이나 완성도는 매우 높아졌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기술력이 뛰어나도 우리의 칸타타에 감동해서, 굳이 우리가 말하지 않아도 스스로 연주하기까지는 아직 갈 길이 멉니다. 이제는 그 일을 하려고 합니다.”   탁계석은 반드시 그날이 올 것을 확신한다. 베토벤의 나인 심포니나 교향곡이 잔 세계 수천 개의 극장에서 공연되는 그날. 오징어 게임과 같은 한류의 바람을 타고 세계 문화예술을 석권하듯이 우리말이 세계 곳곳에서 인기를 얻고 있듯이, 훈민정음이 지구촌 곳곳에서 공연되는 그날이 반드시 올 것이라 믿고 있다.   ▲ 창작칸타타 동방의 빛 공연보습 (문화저널21 DB) 오페라 대본을 처음 시작했던 계기   탁계석의 작품은 칸타타만 있는게 아니다. 오페라 대본도 인기가 높다. 그의 작품에는 유장함과 역사성도 있지만 오랫동안 평을 쓴 영향인지 골계과 해학과 비유와 풍자가 풍부하다. 그는 어떻게 대본을 쓰기 시작했을까?   “2005년도에 ‘소나기’와 ‘메밀꽃’ 등을 썼는데, 이걸 써놓고는 걱정이 되었습니다. ‘기라성 같은 작가들이 많은데 내가 쓰는 게 맞나’ 하는 그 불안감과 자기 질문이 있었거든요. 고민 끝에 하루는 용기를 내서 당대 최고의 작가이신 이강백 선생님을 찾았습니다. ‘제가 오페라 대본 두 편을 쓰는데 이게 과연 맞는지, 아니면 만용인지 검토해주시면 좋겠습니다.’ 하고 요청했죠.”   열흘 후에 다시 만났을 때 이강백 선생은 ‘탁 선생이 쓰는 게 맞다’고 했다. 자신은 오페라를 모르기 때문에 오페라를 절대 쓰지 않지만 탁 선생은 오페라 전문가이기 때문에 당연히 써도 된다는 설명이었다. 이강백 선생이 오페라대본은 전혀 쓰지 않은 것은 아니다. 공석준의 ‘결혼’이 그이 대본이다. 그러나 문제가 발생했다. ‘결혼’에 등장하는 세 사람 중 한 사람이 말을 못 하는 인물이다. 오페라 작품으로는 부적절한 부분이 아닌가. 공석준은 이 부분을 이강백 작가에게 가상으로 대사를 넣어달라고 요청했지만 거잘했다. 오페라를 잘 아는 공석준이 직접 창작하라고 미뤘다. 그 이후 그는 오페라대본은 쓰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당시 최고의 작가가 그렇게 격려해주는 바람에 자신감을 얻고 지금까지 오페라 대본을 쓰고 칸타타까지 이르게 된 것입니다.”   시를 좋아했던 습성, 문학이 화수분 되다   탁계석은 고등학교 당시부터 늘 시를 읽었던 문학도였다. 설민규와 같은 시인도 되고 싶었다. 그런 문학적인 사랑과 관심이 자양분이 되었을까? 아니다. 그에게는 모든 사물에 대한 관심이 있었다. ‘갈대의 나부낌에도 음악이 있다. 시냇물의 흐름에도 음악이 있다. 사람들이 귀를 갖고 있다면 모든 사물에서 음악을 들을 수 있다.’ 그렇게 말한 시인 바이런의 마음이었다.   특별한 창작 공부를 배운 적은 없지만 시작 연습을 꾸준히 펼쳐왔다. 그런 평소의 마음가짐이 시적 화수분을 이루고 마침내 두시간만에 작시한 임준희 곡 ‘독도의 노래’가 임선규 바리톤의 음성으로 KBS 열린음악회에서 불려진 것이다. 이렇듯 탁계석의 즉흥성에는 문학에 대한 오랜 관심에서 비롯되었다.   “제목도 모두 제가 정합니다. 우효원, 오병희 작곡가가 만나 세 시간 만의 ‘달의 춤’이 탄생하고 ‘조국의 혼’이 나올 수 있는거죠. ‘동방의 빛’도 제목을 제가 정했습니다. ‘코리아판타지’ 역시 ‘고래의 꿈’으로 하려 했지만 제가 정한 코리아환타지로 결정되었습니다. ‘환단고기’를 읽고 암각화의 선사시대까지 역사를 공부하면서 제목을 결정한 것이에요. 서사 문학까지 두루 독파한 내용이 농축돼 있다가 어느 순간 순발력있게 솟아나는 겁니다.”   ▲ 에콰도르에서 Kclassic (문화저널21 DB)   우리말 칸타타의 비전   탁계석은 지난 10여년 전부터 K클래식조직위원회를 이끌고 있다. 주제가 우리말 작품에 관한 것인 만큼 K클래식의 성과에 대해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탁계석 주도의 K클래식 탄생의 배경은 무엇일까?   ​“처음에는 KPOP 네이밍에서 착안한 것은 맞습니다. KPOP이란 우리가 처음이 아니고 영국 일본 한국 등 흐름이 있는 거예요 그 흐름을 읽고 K클래식이라는 용어를 만들었습니다. 그 이름을 걸고 지난 9년 동안 눈만 뜨면 홍보하다보니까 이제는 방송 신문 등 언론매체에서도 자연스럽게 퍼진 것입니다. 다행히 국립합창단 연주에 칸타타가 오르면서 더 널리 알려지게 되었죠. 여기에 더해 정덕기 김은혜 박영란 등 작곡가들과도 합류하면서 K클래식의 방향과 속도가 가속화되고 최근 37개국 지휘자들을 K클래식 명예감독으로 위촉하면서 지금은 100명의 네트워크가 형성되었습니다.”   탁 평론가는 여기에 메타버스와 NFC세계가 도래하면서 K클래식이 삽시간에 확산될 수 있는 초강력적인 힘을 얻게 됐다고 내다본다. 현재까지 네트워킹돼 있는 100명 이상의 지휘자들이 메타버스로 띄어든다면 정부나 공공단체가 할 수 없는 막강한 홍보와 파급력을 갖게 된다는 뜻이다.   문제는 국내 인식의 벽이다. 현재는 오히려 외국이 더 개방적이어어 우리 문화를 더 적극적으로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다. 반면 아직도 K클래식 인식이 낮은 편이어서 예산확보가 쉽지 않다는 사실이다.   “정부가 KPOP이나 대중한류에만 예산을 투자하는데 이보다 한 단계높은 클래식 한류에 투자한다면 아주 이상적이죠. 일종의 출산과 양육이 동시에 이뤄질 수 있으니까요. 그러나 이런 정부의 관심과 내수시장 활성화가 이뤄지려면 너무 많은 시간이 소요됩니다. 그래서 차라리 해외에서 인기를 언은 후 역수입하는 쪽을 선택하는게 나을 수 있습니다.”   역수입? 탁계석은 한류식품들도 국내보다도 해외에서 훨씬 인기가 높고 넷플릭스 시리즈 ‘오징어게임’도 해외에서 먼저 흥행한 뒤 국내 시장에서 인기를 얻운 사실을 예로 들었다. 훈민정음도 한국어가 인기를 얻고 있는 세계 곳곳에서 흥행하면 국내에서도 인기상종가를 칠 수 있다는 해석이다.   ​“오징어게임 보세요. 그 영화 덕분에 세종학당마다 한국어를 배우려는 세계인들이 줄을 서 있습니다. 인터넷도 한글 열풍이 대단하고요. 이럴 때 우리작품 훈민정음이 치고 나가야 합니다.”   국경일에는 우리 음악작품 올라야   그렇다고 역수입만 기다릴 수는 없다. 우리말 칸타타가 국립항창단에서의 대대적인 성공을 거둔 것은 하나의 선례가 될 수 있다. 정부가 이 점에 초점을 맞추고 전국 국공립합창단이 공연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면 우리말 칸타타는 더 빠른 시간내에 세계적인 상품이 될 수 있다.   “정부가 이 작품 좋으니까 많이 올리세요, 하면 효과가 있을 것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예술모국어법으로 법률화할 때 예산이 붙고 진정한 지원이 이뤄집니다. 이런 예술모국어법이 없으니 3.1절, 8.15 광복절, 한글날 등 국경일의 의미를 모르고 마냥 놀러가는 날고 오해합니다. 따라서 이날만이라도 우리 언어로 된, 그날을 기념할 수 있는 음악회가 개최돼야 해요.”   ▲ 2021년 10월 12일 예술의전당 무대에 오른 창작칸타타 훈민정음 포스터 (사진제공=국립합창단)   후손들이 그날만이라도 역사를 잊지말자는 취지로 국경일을 만들었다. 그러다 산업화가 되면서 국경일만이라도 푹 쉬고 싶다는 생각에서 점차 ‘노는날’로 변질되더니 지금은 아에 멀리 여행가는 날로 왜곡되고 있다. 탁 평론가는 이 웃지 못할 국경일의 모순은 다시 역사를 되새기는 축제일도 되돌리자는 것이다. 그러려면 축제에 맞는 작품이 있어야 하고 그 작품들이 바로 우리말 음악이라는 논리다. 얼마나 멋진 발상인가.   ​“그래서 예술모국어법을 제정해서 그에 합당한 예산이 주어지면 합창단이 하지 않을 이유가 없습니다. 해야죠. 그래서 피자와 스파게티가 맛있는 줄 알았는데 갈비탕과 김치찜을 먹어야 속이 시원한 것처럼 음악에 담긴 우리의 DNA를 맛보면 그제서야 우리음악의 아름다움을 깨닫게 됩니다. 전세계 디아스포라 교민들은 말할 것도 없고요. 비단 음악만이 아닙니다. 무용 연극 등 모든 분야에 예술모국어법이 적용됩니다. 완전히 새로운 진흥법이 만들어지는 거죠.”   예술모국어법과 우리음악진흥법 나와야   이런 운동이 지속되면 결국 우리 사회에서도 훌륭한 작곡가가 탄생하고 우리 작품이 세계로 수출된다, 그 말이다.   탁 평론가는 예술모국어법과 함께 우리음악진흥법 활성화를 위해 일종의 쿼터제를 적용할 필요가 있다고 피력한다. 예술의전당 등 공연장에서 할당제로 강제할 수 없다면 우리 음악 공연 단체에는 인센티브를 주고 콩쿠르 등 경연대회에서도 역시 인센티브를 부여하는 방식이다. 우리음악 창작 관련 음악가에게 역시 평점을 더 높여주는 방식도 고려할 수 있다.   ​“쿼터제는 ‘구속’이 목적이 아닙니다. 우리 음악을 좀더 빨리 성장시키자는 차원이죠. 아마 이런 내용을 담은 진흥법이 통과된다면 우리 음악은 불붙듯 성장할 겁니다. 명확관화하죠. 이런 제도는 개인이 추진할 수 있는 게 아니라 시스팀화돼야 합니다. 그런 점에서 한국 예술의 핵심인 예술의전당이 책임감을 갖고 선도적으로 추진할 것은 권합니다.”   공교롭게도 탁계석 평론가와 인터뷰한 장소가 예술의전당이다. 예술의전당이 귀담아 들었으면 좋겠다는 뜻일게다. 그런데 탁계석은 정말 8개좌에서 멈출까? 히말라야 14좌를 완동하려면 아직 6개의 작품이 남아있다.   ​“일단 지금까지 나온 작품을 양육한 후, 다시 6개봉을 향해 나갈 수도 있습니다.”   장미는 2만5천개의 품종이 있다. 그런데도 해마다 200여종의 신품종이 탄생한다. 이미 2만5천개의 품종이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 노익장 역시 이런 것 아닐까? 8개봉을 점령했으니 이제 마음을 다잡으면 6개봉쯤은 쉽게 정복하리라 믿는다. 그래서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탁 평론가를 응원한다.   김종섭 월간리뷰 발행인
이세훈 2022-0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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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규) 동정, 본 연구원 자문위원 강철규 전공정위원장, '경제촉진상' 수상. 본 연구원 연구자문위원이신 강철규 (사)서울사회경제연구소 이사장께서 한국경쟁포럼이 수여하는 제2회 ‘경쟁촉진상’을 수상하셨습니다.     (사)서울사회경제연구소는 강철규 이사장이 공정거래분야 전문가들의 모임인 한국경쟁포럼(2005년 창립)이 수여하는 제2회 ‘경쟁촉진상’을 지난 15일 수상했다고 밝혔습니다.   한국경쟁포럼은 2005년 국내 경쟁법·정책 발전에 기여하고자 정부·민간·학계 전문가들이 모여 설립한 단체로, 2020 년부터 경쟁법 분야 발전에 기여한 인물을 선정해 경쟁촉진상을 수여하고 있습니다.   강철규 이사장은 경제정의실천 시민연합 창립멤버로 정책연구위원장, 집행위원장 등으로 활동하며 시민운동에도 적극 참여해온 경제학자 입니다. 반부패 특별위원회 위원, 규제개혁위원장, 부패방지위원장, 제12대 공정거래위원장,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공동대표, 우석대학교 총장 등을 역임했습니다.   
MASTER 2021-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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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T 김춘진 사장) 인터뷰 “식량안보 강화와 농어민 소득증진에 총력". 취임 100여 일…'식량 전략 비축기지’와 ‘주민참여형 스마트팜’ 중점 추진   “식량안보 강화와 농어민 소득증진을 위한 ‘식량 전략 비축기지’와 ‘주민참여형 스마트팜’ 등 신규사업 추진을 위해 국회의장, 국무총리를 비롯해 정부부처 장관 등 대정부 관계자, KIST‧대학교수 등 전문가, 새만금개발공사 등 유관기관과 끊임없이 소통해 왔다. 그 결과 식량 전략 비축기지 건설 검토를 위한 예산이 2022년 정부예산안에 반영되는 성과를 거뒀다.”   ▲ 김춘진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 사장  © 이대웅 기자 지난 3월 15일 취임한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 김춘진 사장의 취임 이후 100여 일간 행보에 대한 설명이다. 김 사장은 취임 이후 농수산식품산업의 현장을 직접 찾아 소통하고 현안을 챙기면서 제도개선 및 신규사업을 구상하는 등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다.   aT, 안정적인 먹거리 확보와 삶의 질 향상을 미션으로 하는 농식품부 산하 공공기관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에 대해서 잘 모르는 국민들이 많아 김춘진 사장에게 기관에 대한 소개를 부탁했다.    김 사장은 “1967년 설립된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는 농림축산식품부 산하 준정부기관으로서, 농수산식품 산업육성을 통해 국민들에게 안정적인 먹거리 확보와 삶의 질 향상을 미션으로 하는 공공기관”이라며 “국민경제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농산물의 수급안정부터 △유통구조 개선, △수출진흥, △식품산업 육성까지 농수산식품 산업에서 민간이 하기 어려운 공익적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aT본사는 광주전남공동혁신도시인 전남 나주에 위치해 있다. 4본부, 1소, 16처ㆍ실, 4사업소(급식지원처, e커머스사업처, 화훼사업센터, 농식품유통교육원)와 11개 국내지역본부, 18개 해외지사로 구성되어 있다.   국가차원에서 식량확보 ‧ 상시 비축 ‧ 관리하는 ‘식량 전략 비축기지’ 조성 필요 비축기지 조성지역으로는 새만금 간척지가 최적지…배후 기반 조성·해상운송 용이   김 사장은 기후변화 및 코로나19 등으로 자국 우선주의  강화, 곡물 수출 통제로 인한 가격 급등세 등 커지고 있는 식량안보의 중요성과 식량 전략 비축기지’ 조성에 대해 강조했다.    “우리나라는 쌀을 제외한 대부분의 곡물 수급을 수입에 의존하고 있어 국내 식량확보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국가차원에서 식량확보 ‧ 상시 비축 ‧ 관리하는 ‘식량 전략 비축기지’를 조성해 식량의 안정적 공급기반을 마련하고 식량 위기 상황에 대비하는 것이 필요하다. 비축기지를 이용한 제분·착유시설 등 식품 가공공장유치를 통해 최대의 식량 ‧ 식품 종합가공 콤비나트를 구축코자 한다."    김 사장은 “비축기지 조성지역으로는 새만금 간척지가 최적지”라면서 “쌀, 밀, 콩 주산지이며 농산물 저장·가공 수요도 많고, 식품제조업(클러스터), 유관기관 인접 등 배후 기반을 갖췄고, 중·일·북한 등 해상운송이 용이하며, 수심이 깊어 대형선박의 접근이 가능한 항만 건설을 통해 동북아 식량 허브로 육성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전략 비축기지와 친환경·신재생·청정에너지 결합모델은 대규모 에너지 자급자족 개발 사례로서 타 산업으로 파급효과가 기대되며, 이를 통해 국가 식량안보를 확립하여 식량안보와 수급  안정에 따른 국민의 관심과 신뢰도를 제고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잘사는 농어촌, 돌아오는 농어촌 위한 ‘주민참여 공유경제형 스마트팜’사업    김 사장은 ‘잘사는 농어촌, 돌아오는 농어촌’을 만들어야 한다며 중점 추진중인 ‘주민참여 공유경제형 스마트팜’사업을 소개했다.   심각한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어 온 농촌의 고령인구와 도시의 청장년 인구가 함께 상생하며 농촌경제에 새로운 활력을 창출할 수 있는 ‘주민참여 공유경제형 스마트팜’ 사업을 추진해 농촌의 고령화 현상과 도시 청장년층의 취업문제를 해결하자는 취지다.   김 사장은 “‘주민참여 공유경제형 스마트팜’은 유관기관 협업으로 스마트팜 단지를 조성해 마을기업이 운영하고 농촌 고령층은 노동력 제공, 청장년층은 스마트팜을 운용하는 사업”이라며 “스마트팜 운영으로 창출되는 수익 일부를 기본소득처럼 마을 전체 농가와 균등하게 배분해 농촌복지를 현실화시킴으로써 살고 싶은 농촌을 만들어 나가고자 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aT는 스마트팜을 통해 재배된 농산물의 판로를 책임지고 확보하여 안정적 농가 소득 창출에 이바지함으로써 신규 일자리 창출 및 지방 인구 유입 등에 기여할 수 있는 농촌의 신사업모델로 정착시켜 나가는 것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 김춘진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 사장  © 이대웅 기자   ‘농식품 빅데이터 거래소(KADX)’ 출범…188종 데이터 개방   aT는 작년 9월, 한국판 뉴딜 과제인 데이터 댐 구축 사업 공모에서 농식품분야 최종사업자로 선정돼 농식품산업 데이터 유통·거래 생태계 구축사업인 ‘농식품 빅데이터 플랫폼 사업’을 추진해 오고 있다.   김 사장은 “올 2월 ‘농식품 빅데이터 거래소(KADX)’를 출범해 188종 데이터 개방(5분야) 및 ‘농산물 물류정보’ 등 거래소 고유 혁신서비스(3종)도 제공하고 있다”면서 “올해는 본격적인 플랫폼 정착을 위해 데이터 개방 295종 및 수요자 맞춤형 서비스 6종으로 확대·제공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또한 “향후 자생적 플랫폼 운영체계를 마련하여 농식품산업의 디지털 경제 활성화를 추진해 나가며, 농식품 생산·유통·소비 데이터를 중심으로 공공·민간기업 생산 데이터가 플랫폼을 통해 거래될 수 있도록 시장조성자 역할을 수행해 나가겠다”고 강조했다.    올해 농수산식품 수출목표 106억불…목표 달성에 최선 다할 것   ‘작년 코로나19로 인한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농수산식품 수출은 전년 대비 3.6% 증가한 98.7억불로 사상 최대 수출액을 달성했다. 금년에도 6월말 기준 전년 동기 대비 15.1% 증가한 54억불로 순항을 이어가고 있다.   김 사장은 농수산식품 수출 활성화 및 수출 확대 방안에 대해 △디지털기반 마케팅 강화 △국가별 맞춤 수출지원 정책 △수출유망전략품목 육성  △비관세장벽 애로 해소 4대 중첨 추진계획을 소개하면서 “올해는 전방위적 지원을 펼쳐 올해 농수산식품 수출목표 106억불 달성에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그는 “해외 유력 온라인몰이나 메가 인플루언서와 연계해 상설 한국식품관을 운영 ‧ 확대하고 온라인・모바일 플랫폼 기반 홍보마케팅을 강화할 것”이라며 “신남방, 신북방, 주력시장 등 국가별 맞춤 수출지원 정책으로 시장다변화를 통한 안정적 수출 구조를 마련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또한 “농어가 소득연계 품목과 인삼・김치에 이어 한국을 대표할 수 있는 HMR‧기능성 품목 등을 발굴・육성하며, 코로나19로 강화된 비관세장벽에 수출업체들이 대응할 수 있도록 수출업체 1:1 맞춤지원을 강화해 나갈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온라인 채널과 협업 통해 라이브커머스 진행…3월부터 총 14회 판매 실적 13억   작년 4천억원대를 기록한 국내 라이브커머스 시장 규모가 올해 2조8천억원, ‘23년에는 10조원으로 급속도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되는 가운데 aT는 최근 온라인 채널과 협업을 통해 라이브커머스를 진행하는 등 새로운 유통 모델을 실험하고 있다.      김 사장은 “라이브방송을 활용해 농수산물의 온라인거래 활성화 및 판로 확대를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특히 국산 농수산물의 소비 촉진에 힘쓰고 있다”면서 “지난 3월부터 총 14회 라이브방송 진행으로 누적 시청자 210만명, 판매 실적 13억을 기록했으며, 특히 지자체와의 협업을 통해 판로 확보가 어려운 지역농산물 및 특산물의 판매 활성화에 기여하고 있다”고 말했다.    aT는 지자체 특산물 판매지원 및 온라인 유통활성화 업무협약(MOU) 체결, 다양한 온라인 채널과 협업을 통해 우수한 제철 농수산물 및 지역특산물 판매를 지원할 예정이다. 김 사장은 “앞으로는 K-Food Fair·국제식품박람회 등과의 연계로 우리 농수산식품의 국내외 신규 판로 개척지원에 적극 앞장서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실천적 ESG경영 위해  ‘ESG경영 CEO자문위원회’ 발족   최근 전 세계적으로 ESG경영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면서 기업 활동에 이윤추구뿐만 아니라 장기적 관점에서의 환경·사회적 책임, 투명한 경영이 요구되고 있다.     aT는 지난 4월 28일 ‘ESG경영 선포식’을 개최하고 [E:지구를 살리는 지속가능 농어업 지원] 온라인거래 활성화 및 친환경 농산물 소비 확대 등으로 탄소중립 정책에 적극 동참 [S:농어민과 만드는 국민 행복 먹거리] 온라인 경매, 직매장‧직거래 활성화 등으로 지역 상생 및 경제활성화를 도모 [G:국민에게 신뢰받는 투명한 aT] 국민‧이해관계자와의 소통을 강화하고 정보공개 확대 등으로 투명성을 제고 라는 ESG추진 방향을 선포한 바 있다.    김 사장은 “국민의 눈높이에 부합하기 위해 계획수립 단계부터 외부전문가와 국민의견을 수렴하고 이를 적극 반영하여 ESG추진 방향을 설정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실천적 ESG경영이 되도록 6월 18일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참여한 ‘ESG경영 CEO자문위원회’를 발족했고, 지속 운영을 통해 사업 추진시 도출된 의견들을 적극 반영해 우리 농어업이 한 단계 도약하는데 기여하는 aT가 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김 사장은 “최근 공공기관 경영평가에서 6년만에 A등급을 달성하는 쾌거를 이뤘다. 그동안 지속적인 제도개선과 혁신 노력을 인정받고 직원들에게 큰 선물을 준 것 같아 무척 기쁘다”면서 “앞으로도 현장 활동을 강화해 현장의 목소리가 정책에 반영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힘주어 말했다.    문화저널21 박명섭 기자
이세훈 2021-0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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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경제문화연구원 사무총장 이세훈, 근대통신박물관 운영.          Modern Communication Museum   근대통신박물관 홈페이지 개설! 본 연구원 사무총장 이세훈께서는 체신부(現,정보통신부) 임용을 시작으로 40년 정보통신 전문가로 현장에서 통신역사와 그 뿌리에 관심을 갖고 5,000여점의 통신 사료를 수집하여 왔다.   수집하여온 소장품은 종류, 시대, 기능별로 구분하여 전신기, 전화기, 진공관, 무전기, 통신장비, 계측장비, 가전 등 찾아 볼 수 있게 하였다. 그리고 우편, 전보, 사진, 기념물, 서적, 인쇄 등으로 분류되는 통신역사도 보여주고 있다.   또한 현대통신 사료도 포함하여 통신기기의 발전사와 그 현장을 볼 수 있게 하였다. 그동안 발품과 시간 그리고 비용을 투자해 공들여 수집한 소장품이 여기 박물관을 통해 후대에게 역사적인 교훈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을 전하고 있다.    아울러 누구에게는 하찮은 고물도 필요한 곳에 함께하면 소중한 보물로 탄생하게 된다며, 주변에 거치적거리는 통신관련 물건이 있다면 "기증"을 기다리고 있다.   https://mcmuseum.co.kr/   1885년 근대통신, 언택트의 시작! 스티브 잡스가 세상에 아이폰을 선보인 이래 대부분의 사람들은 하루 24시간 통신에 접속된 상태로 살아간다. 인터넷과 컴퓨터의 등장도 사실 거슬러 올라가면 모스부호를 이용한 전기통신(電信)에서 비롯된 것이다.   1885년 전기통신이 도입되는 시기가 우리나라 근대화의 상징이다. 이때 전신시설이 속속 가설되고 전보·전화가 개통되면서 이로서 고려시대부터 연기와 횃불을 이용하던 봉수와 파발제도는 구한말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근대통신의 시발점이 되었다.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도입된 근대통신의 역사는 1885년, 인천을 기점으로 서울을 거쳐 평안도 의주에 이르는 경인·경의전신선, 이른바 서로전신선의 개통으로부터 시작된다. 우리에게는 전보(電報)라는 말이 더 익숙하다. 지금의 정보통신 기술의 원천이라 하겠다.   전기통신 140여년의 현재는 초연결 시대로 빠르게 진화하였다. 이제는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실질적인 통신수단 이라기보다는 영화나 소설의 장면으로 여겨지게 되었다. 한때 각광받던 근대통신 시설은 역사 속으로 그 발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근대통신박물관 소개 중에서-   근대통신박물관 이세훈 e-mail : oasisgaja@daum.net
MASTER 2021-0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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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최치원 ⑥] 제5권 눈으로 볼 수 없는 세계. 고운 최치원 선생 후손이 펼쳐낸 전무후무 장편소설    위대한 선각자 최치원 선생은 익히 알려진 바와 같이 유⋅불⋅선 융합에 더하여 풍류도를 설파한 종교철학자이며, 개혁적⋅지성적 실천가로서 한류문화의 발원지다. 이러한 최치원의 업적과 사상 등을 기리기 위해 중국 장쑤성(江蘇省) 양저우(揚州)시에 최치원의 기념관이 건립되어 있고, 10월 15일을 최치원의 날로 지정하고 매년 기념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또한 그곳 중⋅고등학교 역사교과서에 수록하여 학생들에게 최치원 선생의 빛나는 업적을 가르치고 있다.   이에 비해 우리나라에서는 아직까지 최치원 (인물)기념관조차 건립되지 못하고 있 등, 입체적인 연구나 선양 등을 위한 기반구축조차 미미한 안타까운 상황이다. 이에 후손 최진호 작가는 위대한 선각자 최치원은 천 년 전에 살았던 전설의 인물이 아니라, 오늘날에도 살아있으면서 현재를 사는 우리에게 끊임없이 교훈을 건네주는 큰 스승이라는 것을 널리 알리고 싶어 이 소설을 출간했다.   소설 최치원(전5권)에 일관되어지는 흐름은 최치원의 풍류도 선비정신을 한류문화의 진정한 시발점으로 그려냈고, 최치원의 애국심 및 개혁사상에 초점을 맞추어 풀어나갔다. 더하여 사실성을 바탕으로 소설적 요소까지 가미시켜가면서 최치원의 일생을 흥미진지하게 풀어냈다. 특히, 최치원이 남긴 수많은 시문들을 적절하게 배치하여 내용전개의 사실감을 높인 것은 소설의 품격을 더욱 높여주고 있다. 아무쪼록 이 책이 위대한 선각자 최치원 선생의 사상과 인생을 제대로 이해하는 바이블로서의 역할을 다해 나가길 기대한다.   ▲ 소설 최치원 제5권 - 눈으로 볼 수 없는 세계   소설 최치원 제5권 - 눈으로 볼 수 없는 세계   차례 미륵의 추락  서라벌의 굴욕 곡령청송 현자와 소통하다 평화통일의 비밀 후백제를 바치다 평화를 위한 민초들의 결단 자운의 빛을 찾아서 이국이민시의 실천 내 몸의 숨결(풍류도) 승천하는 네 마리 학 최치원이 남겨둔 글 자유인실행自由人實行 추서   책 속에서...   궁예는 말을 마치고 몸을 꼿꼿이 세우더니 이내 눈을 감고 마치 부처인 양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대왕마마, 참으로 훌륭하옵신 법명이옵니다. 선종이라... 이 얼마나 멋진 법명이옵니까? 그래서 오늘날 대왕이 되셨을 뿐만 아니라 미륵까지 되신 게 아닙니까?” 내관은 계속 허리를 굽히며 궁예를 추어 올렸다. “그래, 그래, 나는 앞으로 새 세상을 열 미륵이니라. 암, 미륵이고말고! 나는 후천 개벽을 하여 반드시 새 세상을 열고 말 것 이니라! 그러기 위해서는 이 군왕을 거역하거나 역심을 품은 자들을 제거해야 되느니, 나는 관심법을 터득한 미륵이니라. 내관, 지금 네가 생각하고 있는 것을 맞추어 볼까?” 궁예가 눈을 부라리고 내관을 향해 다가갔다. “저 같은 놈들이 무슨 생각이 있겠습니까?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대왕마마만을 의지하며 신천지가 오기만을 고대하고 있을 뿐입니다. (9p)   문무백관이 모두 모인 어전에는 불을 대낮처럼 밝히고 있었다. 등불처럼 이글거리는 견훤의 얼굴을 바라보며 대신들은 굳은 결의를 다지고 있었다. 특히, 창칼을 그러 쥔 장수들은 지금 당장이라도 적진을 향해 달려 나갈 듯 손을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드디어 때가 왔도다! 우리의 철천지 원수 신라를 쳐부술 때가 왔도다. 우리 백제의 마지막 임금인 의자대왕 재위 20년인 경신년에 신라와 당나라 놈들이 쳐들어 왔었다. 충신인 계백 장군이 황산벌로 나가 화랑 반굴과 관창을 베었지만, 구름같이 몰려오는 나당연합군을 이기지 못하였다. 그리하여 계백 장군의 뜨거운 심장과 오천결사의 피눈물을 삼키고 백제는 운명을 다하였다. 김유신은 웃으며 반월성으로 올라왔고, 소정방은 껄껄대며 고토를 짓밟았다. 오늘은 그로부터 꼭 이백육십칠 년이 되는 해다. 이제 서라벌로 달려가 백제의 원한을 씻고 그 땅, 서라벌을 폐허로 만들어야 한다!” (50p)        치원이 말을 마치자, 법당에서는 뜨거운 열기와 함께 박수 소리가 여기저기서 크게 터져 나왔다. 법회에 참석했던 최언위는 달리 방향을 잡은 최승우의 빈자리를 채우며 최치원의 곁에서 그를 응원하고 있었다. “화엄경전이 아무리 좋은 가르침이라 해도 백성들이 도를 멀리하여(人遠道) 그 뜻을 알지 못하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래서 말인데 이 화엄경전을 사부대중이 알기 쉽게 풀이해 줄 수 있는 논장의 글을 찬술해 줄 수 있겠습니까?” 법회가 끝나고 모두 법당을 빠져나가자 희랑스님이 최치원을 불러 조용히 청을 했다. (69p)   ▲ 최치원이 찬술한 ‘봉암사 지증대사적조탑비(국보 제315호)' '5권 21p'   치원은 풀어쓴 경전의 이름을 법장화상전(송나라 팔만대장경 논장에 수록되었음. 현재 일본 고잔사에 있음)이라 하였다. 경전 내용을 찬찬히 살펴 본 후 희랑스님은 무척 만족스러워했다. 치원은 이 세상의 삶은 우주 음양오행의 일치로 살아야 되고, 너와 나 하나의 공동체인 생명의 빛은 내 마음이 모든 일의 실천 근본이라는 것을 강조하고자 했던 것이다. 즉, 일체유심조의 으뜸으로 초발심을 항상 유지하면서 기본과 원칙을 지키고 오늘 하루 최선을 다하며 살아가야 된다는 생활의 지혜, 즉 지극한 도는 눈앞에 있다(至道在目前)를 쉽게 설명한 것이다. (73p)   태조 왕건은 고개를 뒤로 한껏 젖히고는 목청이 다 보이도록 크게 웃었다. “아, 좋다마다요. 이제 고려와 우리 신라는 형제국이 되었는데, 무엇이 아깝고 서운하겠습니까? 대왕마마께서 취하실 것이 있다면 무엇이든 취하십시오. 고려 왕국과 화친하는 의미에서 제가 제일 아끼는 종제(從弟) 유렴(裕廉)을 질임(인질)으로 개경에 보내도록 하겠습니다.” 경순왕의 말이 끝나자 한쪽 구석에 있던 유렴이 앞에 나와 태조 왕건에게 예를 올렸다. “그렇게 아끼시는 종제를 우리 개경에 보내 주신다니, 과인이 잘 보살피겠습니다. 참으로 미인이구려. 그러나 제가 모셔갔으면 하는 분은 따로 있습니다.” (103p)   최치원은 평화통일에 대한 당위성에 대해 세세한 부분도 놓치지 않고 모두 적었다. 그리고 똑 같은 내용의 ‘평화이국서’ 3부를 만들어 밀봉하고 봉투위에 평화이국서(평화(平和利國書)라고 했다. 이 문서를 신라 경순왕의 특사인 마의태자와 대아찬, 고려 왕건왕의 특사인 무성도사와 최언위 국사, 후백제 견훤왕의 특사인 보리 왕후와 최승우 국사에게 은밀히 전달했다. (116p)   일찍이 최치원이 ‘해인사 선안주원벽기’에 썼던 것이다.   위대하고 위대하도다! 하늘이 귀하게 여기는 것은 사람이요, 사람이 으뜸으로 삼는 것은 하늘이다. 사림이 도를 실천하는 것이요. 도는 사람에게 멀리 있지 않다. 그러므로 도가 높아진다면 사람은 저절로 귀하게 된다. (171p)   최치원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런 최치원을 따라 무량스님도 일어나서 두 손을 정성스레 모아 합장을 했다. 치원도 합장을 하며 스님에게 감사한 마음을 전했다. 최치원은 그토록 그리운 해인사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오랜만에 해인사로 향하는 최치원은 여느 때보다 발걸음이 가볍다는 것을 느꼈다. ‘원효대사와 신라의 요석 공주 사이에 태어난 아들 설총은 아버지와 많은 시간을 함께 하지 못해 마음이 얼마나 아팠을까’ 허나, 모든 인연법 따라 생긴 것이니, 모든 것은 같으므로(만법여일) 모든 것은 한 군데로 되돌아간다(만법귀일) 하지 않았는가. 그러므로 살아 있을 때 대덕을 넓은 바다(大德如海)와 같이 아낌없이 나누어 주고 살라지 않는가. (217p)   ▲ ‘최치원의 천부경 풍류도에서 발원되는 생명탄생의 신비로움’을 형상(이미지)화 시킨 임지호 화백 그림(소설 최치원 제5권 331p)   대사가 사자(使者)에게 말하기를 절을 ‘성주’라고 이름 하셨으니. 절로서는 참으로 영광스러운 일일 것입니다. 용렬한 중을 지극히 총애하시니, 재능도 없으면서 있는 것처럼 흉을 내어 높은 자리를 차지한 느낌입니다. 이는 해조(海鳥)인 원거가 바람을 피해 뭍으로 오자, 봉황새로 잘못 안 참새가 날아들었다는 것에 비유할 만하니, 날씨가 궂을 때 산 속에 숨어 무늬를 윤택하게 한다는 표범의 고사(故事)에 부끄러운 일입니다, 하였다(270p)   보리황후 능을 참배하고 왕거인과 무성도사와 헤어진 후 언덕 위에 있는 성당으로 향했다. 밀리엄 수녀는 여전히 성당을 지키고 있었지만, 그녀도 나이를 이기지 못해 백발을 쓸어 넘기며 굽은 허리를 겨우 폈다. “세월이 참 많이도 흘렀어요.” 손에 건 묵주를 헤며 밀리엄 수녀가 조용히 말했다. “수녀님은 고향이 그립지 않으세요?” 호몽이 손을 잡으며 따뜻하게 물었다. “이 나이에 고향이 어디 있겠어요? 이 언덕이 저의 고향이지요. 제가 이곳에 온지도 육십여 년 가까이나 되는데요. 이곳에 와서 저를 따라 천주를 믿는 백성이 저의 가족이고 형제들이이죠. 최아찬 께서는 제가 천주님 나라로 떠나고 나면 저를 이 언덕에 묻어주세요. 십자가가 잘 보이는 이곳에요.” 밀리엄 수녀가 서쪽 하늘을 바라보며 씁쓸히 웃었다. 그때 언덕에 있던 아이들이 성가연습을 하며 느티나무 밑에서 큰 소리를 냈다. “저 아이들이 우리의 미래죠.”(316p)   화개동이란 시문에서 동방군자국(한반도)은 해와 달의 허공 밖에 있고, 하늘과 땅은 태극 가운데에 있습니다. 동쪽나라 동방군자국 화개동(불교 화엄의 세계)은 별천지 속의 신선의 경지, 신선 옥 베개 밀치고 일어나니 어느새 천 년이구나. 즉 오늘 하루의 순간순간들을 천년처럼 소중하게 생각하고 살아가라는 것입니다. 즉 지금 이순간이 제일 소중한 시간임을 가르친 것입니다. (333p)   왕의 지시를 받은 조정대신이 풍수지리에 밝은 현자를 찾아서 어떠한 장소가 좋으냐고 물어보자 현자는 “최치원 선생의 위대한 행적이 남아 있는 곳을 모두 살펴본 후 인과관계가 후세까지 전해 갈 수 있는 곳으로 하겠습니다.”라고 말했다. 현자는 최치원 행적을 면밀히 살펴보고 와서 조정대신에게 보고하기를 신라 태수직 생활을 하던 곳 중 낭혜화상비가 잘 보존되어 있는 성주사와 고려국 국태민안을 위해서 많이 기도했다고 하는 부석사(충남 서산군 소재) 지역 중심에 소재하고 있는 천하명당으로 소문난 보금산(충남 홍성군 장곡면 소재)이 좋다고 말했다. 조정대신이 입궐하여 현종왕에게 즉시 이러한 사실을 고하자 현종대왕은 신성묘를 보금산 자락에 즉시 조성하라고 하명하였다. (346p)  - 끝 -                                                          지은이 최진호는 경남 함양에서 태어나 동국대학교 경영대학원을 수료했다. 총무처 기획예산담당, 국세청 기획예산담당, 서울지방국세청 조사관리과 서기관, 국세청 인사계장 등을 지냈다. 현재는 탑코리아세무법인 대표이사 회장, 불교아카데미 이사, 한국세무사회 이사 등을 맡고 있으며, '우리말 불교경전'을 펴낸 바 있다. 변화는 많지만 하나로 꿰어 있고 무게가 무겁지만 가라앉지 않은(萬變一貫多重而不沈) 최치원에 대한 장편소설을 집필하게 되었다.   최치원의 사람 사랑과 나라 사랑을 널리 알리기 위한 일념(一念) 하나로 작가는 지난 30년 동안 유적지를 답사하고 연구한 자료를 가지고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해 소설화 작업을 해 책으로 펴냈다.    최진호 장편소설 '최치원' 1권 성인과의 만남(300p). 2권 통찰의 지혜(296p). 3권 꿈꾸는 별(324p). 4권 하늘의 비밀(332p). 5권 눈으로 볼 수 없는 세계(348p) / 도서출판 집사재 / 신국판(152×225) / 1쇄 발행일 2021년 02월 10일   문화저널21 최병국 기자
이세훈 2021-0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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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최치원 ⑤] 제4권 하늘의 비밀. 고운 최치원 선생 후손이 펼쳐낸 전무후무 장편소설   ▲ 소설 최치원 제4권 - 하늘의 비밀 소설 최치원 제4권 - 하늘의 비밀   차례   대숭복사비 여왕의 눈물 예의 고장 태산군(현 정읍시) 액운 충서의 고을 부성군(현 서산시) 소림사의 무영검 시무십조時務十條 백성 위한 대관림大館林(현 함양군) 이별과 해후 해인사 가는 길 해인사 마애불 여왕의 죽음 새로운 길 하늘의 비밀   책 속에서…   토함산 기슭에는 왕실의 모든 고관들, 서라벌에 들어와 있던 외국 사신들. 동시와 남시 그리고 서시에서 큰 장사를 하는 모든 장사꾼들, 그리고 개운포와 감포 일대에서 장사를 하는 왜인들, 노인들과 젊은이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지팡이에 의지하여 가파른 길을 오르던 노인들은 낯모르는 젊은이들이 웃으며 달려와 등을 내미는 바람에 덩실덩실 춤까지 추었다. “아이고 내 생전에 이렇게 잘 생긴 젊은이가 씩씩하게 업어 주는 일도 처음이네. 우리 아들은 농사짓느라 힘들어 허리도 못 펴고 손자들은 어린데, 아니고 어디서 온 젊은이신가?” 한 노인이 예상치 못한 호강에 즐거워했다. “남산 기슭에서 훈련을 하는 화랑이옵니다.”(14p)   대저 도(道)는 사람으로부터 멀리 있지 않고, 사람은 나라에 따라서 차이가 없다. (道不遠人 人無異國) 이런 까닭에 우리나라 사람들이 불법(佛法)이나 유학(儒學)을 배우는 것은 필연적이다. 서쪽으로 큰 바다를 건너 통역을 거듭해 가며 학문에 종사할 적에, 목숨을 걸고 통나무배에 맡기면서도 마음은 보주(寶洲, 西國)에 달려 있다. 빈 채로 갔다가 가득 채워 돌아왔고, 험난한 일을 먼저하고 얻은 바를 뒤로 하였으니, 역시 보옥(寶玉)을 캐는 자가 곤륜산(崑崙山)의 높음을 꺼리지 않고,  진주를 찾는 자가 검은 용이 사는 바닷물 속의 깊음을 피하지 않는 것과 같았다. (66p)   ▲ 최치원이 남긴 쌍계사진감선사대공렵탑비문(최치원 제4권 67p)   서라벌 외곽에 ‘지은’이라고 하는 처자가 살고 있었는데, 그녀는 앞을 보지 못하는 어미니를 봉양하고 있었다. 낮에는 장군의 집에 가서 빨래를 해 주고 방아를 찧어주며 쌀을 얻어와 어머니와 함께 끼니를 겨우 해결했다. 그러던 어느날 장군의 비복에게 겁탈을 당하게 되었다. 그녀는 너무나 슬퍼 집으로 돌아오던 길에 고갯마루에서 목을 매려 했다, 때마침 훈련을 마치고 돌아가던 효종랑이라는 화랑이 그 모습을 발견하여 그녀는 겨우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낭자, 어찌하여 이처럼 젊은 나이에 그리 흉한 짓을 도모하고 있소?” “부끄럽습니다. 이대로 죽게 해 주소서.” (94p)   학문이라는 것은 익히고 또 익혀 축적되어야 한다는 것을 강조했다. 또한 어느 누구와의 약속들은 반드시 행동으로 실천해야 된다는 심법개혁 및 풍류지도 팔훈을 말했다. 그 풍류지도 심법개혁 실천방편으로 ‘머리’에는 뜨거운 열정으로 도전하는 ‘창의’가 있는 것이 첫째이다. ‘이마’에는 남을 존경하고 배려하며 나를 낮추는 ‘예절’이 있는 것이 둘째이다. ‘귀’에는 남의 말을 지혜롭게 경청하는 마음의 ‘소통’이 있는 것이 셋째이다. ‘눈’에는 즐거운 마음속에서 아름다운 ‘미소’가 있는 것이 넷째이다. (105p)   그 중에서도 최치원이 주목한 것은 그 절의 입구에 있는 마애여래삼존상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사람들은 골짜기 안에 그런 마애불이 숨겨져 있다는 것조차 알지 못하고 있었다. 치원은 손수 물걸레를 들고 그 마애불을 닦았고, 부임 첫 행사로 그 마애불 아래에서 법회를 열었다. 삼존마애불상 한가운데 여려 입상이 있고, 오른편에 보살 입상이 있고, 왼편에 반가사유상이 아로 새겨져 있었다. 여래 입상은 풍만한 얼굴에 은행 같은 눈, 둥굴고 긴 눈썹, 얕고 넓은 코를 하고 있으며, 온화한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가사가 발등까지 덮였는데. 발밑에는 연꽃이 아로새겨져 있었다. 보살 입상은 머리에 산 모양의 관을 썼고. 윗몸은 벗었으며 두 손을 앞에 모아 구슬을 잡고 있었다. (143p)    보리는 치원의 칼에 베어 어깨를 많이 다친 것처럼 힘겨워하며 계곡 아래로 내려왔다. “오늘은 내가 패했으니 이만 물러가자.” 보리가 패배를 선언하자 부하 장수와 병사들이 어깨가 축 처진 채 발길을 돌려 바람처럼 사라졌다. 그러게 보리를 따라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적고적 병사들을 바라보며 치원은 가슴이 아렸다. 치원은 보리가 남기고 간 마지막 말 한마디를 머릿속으로 되뇌었다. 아직도 변함없는 보리의 진심어린 따뜻한 손길이 자신을 감싸고 있다는 생각을 하니 당나라로 가는 먼 길이 그리 길게만 여겨지지 않았다. 치원은 시야에서 멀리 사라져가는 보리를 향해 가만히 고개를 숙였다. (157p)   사법관리들의 부정부패로 인하여 사법정의가 왜곡되면 국민정신이 반국가주의로 이반되게 됩니다. 그러므로 나라는 바르게 운영될 수 없고 결국 패망의 길로 가게 됩니다. 사법관리의 부정부패를 감시하는 사법특별기구의 장은 요순시대의 왕위 계승을 민주적인 선출방식으로 선출했던 것과 같이 선거에 의해 선출해야 합니다. (185p)    호몽이 낯을 붉히며 대답했다. “내 가기 전에 그 막내아들에게 이름을 내려주지.” 여왕이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러자 취악대가 다시 울리고 무희들이 춤을 췄다. 여왕의 연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하자, 그 주위로 인근 태수들과 백성들의 행렬이 삼십 리 넘게 이어지며 온 산길을 덮었다. 그야말로 꽃밭이 따로 없었으며, 향기로운 그 내음이 신라 전역으로 퍼져 나갔다. 최치원은 여왕의 연을 자신의 마음이 서려있는 명륜당으로 안내했다. 백성들은 천령군이 생긴 이래 최초로 새로 세운 명륜당에서 대왕을 모시고 큰 잔치를 벌이게 된 것이 마치 꿈만 같았다. “천령군 같은 궁벽한 산골 마을에서 온 백성이 여왕마마를 모시고 현지에서 잔치를 벌이는 것은 신라 개국 이래 최초 일일 거야,”(203p)   ▲ ‘최치원의 풍류도를 통한 인생지도 및 처세지도’를 만드는 창조의 길을 만드는 것을 이미지(형상화)시킨 임지호 화백 그림(소설 최치원 제4권 245p)   국사는 먼 하늘을 바라보며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그러면 어찌해야 옳겠습니까? 서남쪽 무주 땅에 견훤이 신라 천년 사직의 새 주인이 되겠습니까, 아니면 한수 이북의 금성(철원)지방의 궁예입니까?” 치원은 재촉하며 물어보았다. “무주의 견훤이 새 주인이라면 내가 왜 무주 땅에서 그대가 있는 이곳까지 왔겠는가? 또 궁예가 주인이라면 내가 금성 땅으로 가지 왜 그대 곁에 있겠는가? 아무 말 말고 저 고개를 넘어 보세” 국사가 고개를 가로저으며 일어섰다. “그러면 소생의 미래는 어찌 되겠습니까? (256p)   치원은 비장한 어조로 국사에게 모든 것을 이야기 했다. “거 참 여러 가지로 잘 되었네. 절친한 주지승과 가형이 있고, 곳간에는 풍족한 양식이 쌓여 있으니 무엇이 걱정이겠나? 더구나 절 밖에는 든든한 승군이 천 명이나 지키고 있지 않은가? 예로부터 명당은 비산비야 엄택곡부(非山非野 奄宅曲阜)라 하였는데, 바로 이 가야산이 그런 곳이지. 산이 높고 크기는 하나 들도 적당히 있고, 산세가 기묘하여 절을 외부로부터 완전히 막아주니 오래도록 보존되고 널리 번창하여 법보사찰로서 명성을 계속 이어갈 사찰이지. 명당 중의 명당이야.” 국사가 얼굴을 활짝 펴며 크게 웃었다. 그리고 한 동안 두 사람은 묵묵히 산길을 걸어 내려왔다. (272p)   치원은 사람을 시켜 가족들을 집으로 모이게 했다. 가족들이 모인 자리에서 반야부인은 겨우 힘을 내어 말하였다. “내 살아생전에 너희들에게 몸소 효를 실천해 보이려고 많은 노력을 했으나, 너희들이 보고 느끼기에는 많은 부족함이 있었을 거다. 그러나 이 어미의 마지막 가르침이다. 효는 가족의 얼굴이고 거울이네. 자손만대에 까지 효가 이어질 수 있도록 서로서로가 노력하고 도와주도록 하게.” (295p)   천부경은 일시무시일 一始無始一로 시작해서 인중천지일人中天地一일종무종일 일一終無終一로 끝을 맺었습니다. 이 세상 우주 만물의 이치를 여든 자의 글로 표현한 것이지요. 즉, 자연으로 끝나지 않는 것이 없다는 뜻입니다. 천부경 81자와 풍류도 50자를 합하면 131자가 됩니다. 하나(一)에서 시작된 우주(三)는 하나에서 끝이 되나 이 끝은 끝이 아니고 새로운 시작의 연결고리인 것입니다. 이것은 일시무시일(一), 인중천지일(삼(三)에다 풍류도 사상을 융합하고 포용하여 새로운 문자로 표현한 것입니다. 치원은 사례를 들어 상세히 설명했다. (308p) (계속)   지은이 최진호는 경남 함양에서 태어나 동국대학교 경영대학원을 수료했다. 총무처 기획예산담당, 국세청 기획예산담당, 서울지방국세청 조사관리과 서기관, 국세청 인사계장 등을 지냈다. 현재는 탑코리아세무법인 대표이사 회장, 불교아카데미 이사, 한국세무사회 이사 등을 맡고 있으며, '우리말 불교경전'을 펴낸 바 있다. 변화는 많지만 하나로 꿰어 있고 무게가 무겁지만 가라앉지 않은(萬變一貫多重而不沈) 최치원에 대한 장편소설을 집필하게 되었다.   최치원의 사람 사랑과 나라 사랑을 널리 알리기 위한 일념(一念) 하나로 작가는 지난 30년 동안 유적지를 답사하고 연구한 자료를 가지고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해 소설화 작업을 해 책으로 펴냈다.    최진호 장편소설 '최치원' 1권 성인과의 만남(300p). 2권 통찰의 지혜(296p). 3권 꿈꾸는 별(324p). 4권 하늘의 비밀(332p). 5권 눈으로 볼 수 없는 세계(348p) / 도서출판 집사재 / 신국판(152×225) / 1쇄 발행일 2021년 02월 10일   문화저널21 최병국 기자
이세훈 2021-0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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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최치원 ④] 제3권 꿈꾸는 별. 고운 최치원 선생 후손이 펼쳐낸 전무후무 장편소설    ▲ 소설 최치원 제3권 꿈꾸는 별 최치원 제3권 꿈꾸는 별   차례 시성들과 소통 아버지 최견일 공公 한림학사 왕의 잔치 토함산 심야의 입궁 대왕의 선물 헌강대왕 대왕의 유언 은함殷含 수상한 세월 여왕의 시대 서라벌의 온기 삼대목 왕거인 부록(소설 속 용어 해설 · 계원필경 · 화엄일승법계도)   소설 최치원 제3권 - 꿈꾸는 별   책 속에서   그 다음으로 생겨난 것은 춘추전국시대. 나라와 나라 간 전쟁이 계속되고 있을 때 진나라 진시황은 13세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올랐다. 진시황은 거상 여불위 재상(진시황의 숙부)의 도움을 받아 정치를 해나가면서 큰 꿈을 키웠다. 그의 큰 꿈은 춘추전국을 한 국가로 만드는 것이었다. 그러기 위해 기원전 221년 자기 나라 백성에게 천하통일을 선포했다. 통일된 하나의 나라를 새롭게 세우는 것이 가장 큰 꿈이었다. 세계 중심 국가로 되기 위해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과학 등 각 분야에서 가장 뛰어난 인재를 등용하는 것이 급선무였다. 진시황은 인재등용 조건으로 출신국이나 귀천을 구별하지 않았다. (10p)   몇몇 백성들이 모여 수군거렸다. 그때 신라 골품제도를 잘 알고 있는 한 사내가 나서 미욱한 여인들을 타박했다. “거 모르는 소리. 아무리 뛰어난 인물이라도 그건 안 될 소리지. 제아무리 당나라에서 고관대작을 했더라도 신라에서는 6두품 출신이잖아. 잘 해야 7등급이나 8등급 벼슬을 받을 거야.” 신라의 골품제도 이야기가 나오자 모두 하나같이 입을 다물었다. 최치원 일행의 수레가 서문을 통과하여 월성으로 들어가자 더 많은 사람들이 구름같이 몰려들어 수군거리며 부러워했다. 한 사내가 그 사이를 비집듯 어렵게 통과하자 풍물패가 풍악을 울리는가 싶더니, 궁중에서 보낸 아름다운 무희들이 춤을 추며 최치원 일행을 환영하고 있었다. (57p)   “아마 회교를 믿는 회교도일 것이옵니다. 장안에도 회족들은 따로 모여 살며 자신들의 종교를 지키고 있사옵니다. 하루에 다섯 번, 자신들의 성지를 향해 절을 하는 것이옵니다. 마호메트라고 하는 자신들이 존경하고 숭배하는 성인에게 예를 표하는 것이옵니다.” 최치원이 소상하게 아뢰자 왕은 그의 학식에 감동을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마호메트라는 성인은 서역 성인이오? 그렇다면 야훼를 믿는 경고 신자와는 어떤 관계요?” 잠시 깊은 생각에 잠겨 있던 대왕은 다시 고개를 들어 치원을 바라보았다. (100p)   기도가 끝나자마자 마르코 수도사는 왕성한 식욕을 자랑하며 고기부터 손을 댔다. 치원과 호몽은 처음 만난 처녀와 총각처럼 수줍은 눈길을 주고받으며 행복한 표정으로 식사를 했다. “저는 서라벌이라는 타국에서 이렇게 행복한데, 저의 부모님은 이 시간 어떻게 지내고 계신지 참.” 식사를 마친 밀리엄 수녀가 서쪽을 바라보며 탄식을 했다. 그러자 호몽이 하소연하듯 중얼거리는 그의 손을 꼭 쥐어주었다. 어린 나이에 머나먼 당나라로 건너가 오랜 세월 외로움을 느끼며 생활을 해 본 치원은 수녀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었다. 그러나 주위의 관심이 별다른 위로가 되지 못한다는 것을 잘 알기에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빠른 시일 내 모든 것이 안정되어 모두 제자리로 돌아가길 바랄 뿐이었다. "자, 자... 어서 일어나요. 갈 길이 멀다구요(127p)   치원이 몸 둘 바를 몰라 아뢰자 대왕은 검지를 인중에 대며 목소리를 낮추라고 했다. “천만에요. 천만에! 왕의 밤일이라는 것이 별거 있겠소? 주연을 베풀어 향연에 젖고, 미인을 탐하여 그저 주지육림에 빠지는 일이 다반사 아니겠소? 하지만 그 일도 하루 이틀이오. 그 나물에 그 밥 먹듯이 매일매일 향락과 열락이 이제 너무나 지겹소이다. 지난번 접견 시에 과인은 이상하게도 수녀님에게 지대한 관심을 갖게 되었소. 별 말은 없지만 수녀님은 다른 사람들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를 풍긴다는 느낌을 갖게 했소. 지금까지 우리 궁에는 수많은 고관대작과 외국인 드나들었지만 난 그날 수녀님에게 매우 색다른 느낌을 받았소, 수녀님 존함이 어떻게 되오?” 대왕은 밀러엄 수녀를 바라보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저는 세례명이 밀이엄이고 세속의 이름은 배아숙입니다. 저의 아버지가 지어주진 이름이지요.”(144P)   계원필경 서문에 「사람들이 백을 하면 나는 천배 이상 노력하여 깨달은 바를 반드시 실천하였다(實得人百之己千之)」라고 쓴 글은 공자가 말씀한 인백기천人百己千보다는 실득實得 이 두 글자는 공부하여 얻은 지식을 받드시 사회에 실행하여 남에게 도움을 주라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또한 실천주의 사상을 세상 사람들에게 가르치고자 하는 뜻이 더욱더 과인의 가슴에 깊이 와 닿았소. 노력하여 깨달은 것을 뜨거운 열정으로 반드시 실천하는 정신을 국민정신으로 백성들에게 널리 승화시킬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하고 조정 대신들을 이보다 더 정신으로 나라를 위해 천배이상 노력해 줄 것을 당부 드리겠소. (162p)   ▲ ‘최치원 실득인백지기천지(實得人百之己千之)’ 정신을 이미지(형상)화시킨 임지호 화백 그림(소설 최치원 제3권 169p) 도가 어찌 사람으로부터 멀리 있겠느냐. 설령 배움 없는 시골뜨기라 하더라도 능히 속세에서 벗어날 수 있느니라. 즉, 우주만물을 있는 그대로 관찰하는 능력을 갖추어 자기 생각을 상대방과 함께 소통할 수 있어야 한다. 다시 말해 서로 소통하는 것이 도의 실천방법이다. 이로써 하늘과 땅이 말하지 못함을 알았고, 지극한 도에 이르는 길이 아주 멀다는 것을 체험하였다고 하였다. 그러나 지극한 도는 사람으로부터 멀리 있지 아니하고 원래 눈앞에 있다고 했다(至道在目前). (210p)   진성여왕 또한 위홍과 보내는 시간이 마냥 행복하기만 했다. “다른 사람들이 듣습니다. 절대를 저를 숙부라고 부리지 마십시오. 상대등이라는 관직을 부르시거나 그냥 대각간으로 부르시든지요.” 위홍은 짐짓 엄숙하게 말하기도 했다. “사람들이 없을 때는 숙부라고 부르고 싶어요. 정말 숙부가 안계시면 이 사람이 어찌 왕위를 지탱할 수 있겠습니까? 전 숙부가 항상 제 곁에 계셔서 무척이나 좋습니다. 선덕여왕께서도 숙부이신 용천공을 하늘처럼 믿다가 결국은...”소녀처럼 어리광을 부리던 여왕이 끝내 말을 잇지 못하고 얼굴을 붉혔다. “대왕마마 황공하옵니다. 그 다음 말은....”(253p)   아니, 저런 내로라하는 장수들이 이렇게 먼 이역까지 찾아온 것도 모자라 이토록 자그마한 대진사에서 저토록 진지하게 예배를 보는 것은 도대체 무슨 까닭일까? 경교라고 하는 것은 무엇이며, 이 교당 끝에 서 있는 십자가는 또 무슨 의미란 말인가. 왜에서 건너온 경교 신자들도 상당한 수준의 무사들이라는데  마치 조용한 양떼들이 움직이는 것처럼 순명하며 겸손한 모습은 대체 무슨 이유란 말인가? 앞자리에 앉아 조용히 의식을 지켜보던 상대등은 이처럼 기이한 광경에 놀란 나머지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러면서 유리창으로 불리는 곳으로 형형색색의 햇살이 가득 들어오는 것을 그대로 맞았다. 지금까지 서라벌에서 구경해 본 일이 없는 희한한 물건이었다. “저 유리창은 어찌 만든 것인고?” 상대등은 옆에 있는 치원을 향해 물었다. (259p)   상대등 역시 도통 그 의미를 알 수가 없었다. 그래서 대구화상에게 그 글을 건네어 의미를 알고자 했다. 상대등에게 수상한 방문을 건네받은 대구화상은 그 글을 몇 번이고 되풀이해 읽어가며 의미를 찾으려 몹시 애를 썼다. 그리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이것은 다라니경을 흉내 낸 것으로, 그 내용이 어렵지는 않습니다. 다만...” 대구화상이 잠시 말을 끊고 주저하자 상대등은 더욱 궁금해졌다. “빨리 해석해 보시오. 내용이 도대체 무엇입니까?” 상대등이 성화에  못 이겨 대구화상은 떨리는 목소리로 겨우 입을 열었다. (277p)   최치원이 가지고 간 보따리를 들고 그들을 따라 토굴 속으로 들어갔다. 황토와 바위가 절반쯤 섞인 그 토굴 안에는 거적이 깔려 있었고, 한쪽 벽면에는 달마대사인 듯한 눈이 큰  화상의 얼굴이 새겨져 있었다. 다른 한쪽 벽면에는 북두칠성이 새겨져 있는 것이 마치 신비로운 세계에 빠져든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고 있었다. 더 신기한 것은 왕거인이 누운 머리맡에는 촛불과 향, 그리고 큰 칼 한 자루가 물그릇 위에 놓여 있었는데, 그 칼끝은 벽에 새겨진 북두칠성을 향해 매서운 자태를 드러냈다. 토굴 안을 둘러보며 놀라움을 금치 못하던 최치원은 이내 정신을 가다듬고 가지고 간 보따리를 풀었다. 그리고 약기름을 꺼내 제일 상석인 듯한 사내를 불러 왕거인의 옷을 벗기고 화상을 입은 상처에 기름을 발라 주었다. 최치원의 손끝이 닿을 때마다 왕거인은 아픔 때문에 꿈틀꿈틀하면서 희한하게도 비명대신 이상야릇한 소리를 질렀다. (292p)   “뭐야? 해인사 뒷산에?” “예, 스승님. 그 가야산 어딘가에 그 절을 창건한 분들이 서라벌, 아니 통일신라의 강역 중에서도 산수 아름다운 곳곳에 불사를 시작하면서 해인사는 특히 국가의 번영과 안위를 위해서 후세까지 이어질 곳이라 예견하여 해인사 절 뒤편 산 정상 가까운 곳에서 서라벌과 동해의 해 뜨는 모습을 가장 먼저 받아들이는 바위들 중 자연적으로 부처 모습을 갖추고 서 있는 큰 바위를 발견하고 그곳에 미륵 세계를 알려주는 신비스러운 마애불을 새겨 놓았다고 합니다.” 이때 호몽이 별거 아니라는 식으로 왕거인의 말을 가로막았다. “에이 난 또 뭐라고. 왕거인 그건 좀 믿기 어려운 얘긴데? 우리가 듣기로는 지금 해인사에는 스님과 거주하는 신도들만 이백 명이 넘고 승군이 계곡 사이에 팔백 명이나 진을 치고 있다고 하는데, 그렇게 큰 마애불이 바위에 새겨져 있다면 누구든 찾아내지 않았을까?” (302p)  (계속)   지은이 최진호는 경남 함양에서 태어나 동국대학교 경영대학원을 수료했다. 총무처 기획예산담당, 국세청 기획예산담당, 서울지방국세청 조사관리과 서기관, 국세청 인사계장 등을 지냈다. 현재는 탑코리아세무법인 대표이사 회장, 불교아카데미 이사, 한국세무사회 이사 등을 맡고 있으며, '우리말 불교경전'을 펴낸 바 있다. 변화는 많지만 하나로 꿰어 있고 무게가 무겁지만 가라앉지 않은(萬變一貫多重而不沈) 최치원에 대한 장편소설을 집필하게 되었다.   최치원의 사람 사랑과 나라 사랑을 널리 알리기 위한 일념(一念) 하나로 작가는 지난 30년 동안 유적지를 답사하고 연구한 자료를 가지고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해 소설화 작업을 해 책으로 펴냈다.    최진호 장편소설 '최치원' 1권 성인과의 만남(300p). 2권 통찰의 지혜(296p). 3권 꿈꾸는 별(324p). 4권 하늘의 비밀(332p). 5권 눈으로 볼 수 없는 세계(348p) / 도서출판 집사재 / 신국판(152×225) / 1쇄 발행일 2021년 02월 10일   문화저널21 최병국 기자
이세훈 2021-0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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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최치원 ③] 제2권 통찰의 지혜. 고운 최치원 선생 후손이 펼쳐낸 전무후무 장편소설    ▲ 최치원 제2권 통찰의 지혜 최치원 제2권 통찰의 지혜   차례   쌍녀분 강남 아가씨와 도사 종리권의 제자들 첫사랑 보리 10년 만의 서라벌 소림사의 인연 난을 만나다 장군이 부르다 쌍가락지를 전해 주다 회남진淮南鎭에서 전란 속으로 격황소서 혼돈의 정점 황소, 물러나다   책 속에서…   현령은 몸을 꼿꼿이 세우고 두 신임 현위를 향해 다소 강렬한 눈빛을 보냈다. 그것은 마치 신임 관리에 대한 노련한 상급자의 매서운 훈육과도 같았다. 현령이 나간 후 치원은 그제야 자리에 앉아 지친 몸을 달랠 수 있었다. 그러면서 눈앞에 놓인 문서들을 살피며 꼼꼼히 읽어 내려갔다. 그때 단정히 앉아 벌써부터 일을 시작하는 치원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상급 관리들이 다가왔다. “이 사람아! 부임하자마자 일을 그렇게 열심히 하면 되느냐. 대충 설렁설렁해. 여기는 장안처럼 요란하게 행정을 하는 곳이 아니야. 금표 현위와 적당히 상의해서 대충대충 해치워. (12p)   그날 밤, 제를 올린 후 시를 쓰고 나서 치원은 쌍녀분이 보이는 이씨 집성촌 마을 끝에 있는 초현역招賢驛이라는 객관에서 묵게 되었다. 객관의 늙은 하녀가 저녁상을 치우고 나자 황초가 바람에 일렁이고 칼끝 같은 그믐달이 스러지면서 치원은 쏟아지는 잠을 이기지 못했다. 그때 문이 조용히 열리면서 단정한 차림의 두 여인이 술상을 들고 들어왔다. “그대들은 뉘시오?” 치원은 자꾸만 처지는 눈꺼풀을 부비며 큰소리로 외쳤다. 그러나 두 여인은 말없이 상을 내려놓고 다소곳이 예를 다해 큰절을 올렸다. “혹시 그대들은?” 치원은 놀란 나머지 말을 제대로 잇지 못했다. 그때 한 여인이 나서며 조용히 말했다. (31p)   유혼은 한스러움 떠나 외로운 무덤에 의지하며 복숭아 빛 뺨 버들눈썹 봄을 맞이했네 학을 타고 삼신산(봉래산, 방장산, 영주산) 길 찾아가기 어려우며 봉황이 공중으로 날아 먼지 되었네 세상살이 그때에는 손님에 부끄러웠는데 오늘 낯모르는 사람에게 애교 부리네 시에 내 뜻 알리는 게 매우 부끄러워 돌아올 시 한 수에 한 가닥 걱정이네 (39p)   하얀 옷에 검은 모자를 쓴 그는 우물가를 열두 번 돌고 나서 무릎을 꿇더니 이내 북쪽을 향해 주문을 외며 신령에게 무엇인가를 받고자 하는 염력 의식을 시작했다. 그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우러러 바라보며 한참 동안 장중한 주문을 외웠다. 얼마 후, 이윽고 자리에서 일어서더니 미리 준비한 커다란 함지박에 물을 받고는 양 팔을 벌려 하늘을 향해 기도 드렸다. 그리고 큰소리로 외쳤다.   “북두칠성님이시여, 이제 하강하시옵소서.” 여 도사가 북쪽 하늘을 향해 마치 살아 있는 사람을 맞듯 정중한 몸짓을 하자 놀랍게도 함지박의 물 위에는 별의 모습이 나타났다. 그냥 눈으로 보기에 초롱초롱한 별들이 그 일렁이는 함지박의 물속에 아주 선명한 모습으로 떠오르며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66p)   ▲ ‘행정실명제’를 실시하여 나라와 백성의 이익을 키우는 것을 이미지(형상)화시킨 임지호 화백 그림(소설 최치원 제2권 223p) 지난밤 종리권선사는 제자들을 불러 모은 자리에서 소림사로 떠나는 보리가 못내 불안하다는 속내를 내비쳤다. 마침 그 이야기를 들은 현준스님이 자청하여 보리와 함께 길을 떠나기로 했다. “하, 고것이 반년도 되지 않았건만 깊은 정을 남겨 놓고 떠나가려고 하니 마음 한구석이 텅 비어 있는 것 같네. 떠나려고 한 이는 발걸음이 참으로 무거울 터인데.” 선사가 빈 입맛을 다시며 허연 턱수염을 쓸어 내렸다. 종리권선사는 만귀 화상에게 전하는 서신을 현준스님에게 건네주며 보리의 앞날을 부탁한다는 말도 전하도록 당부했다. (110p)   “앞으로 나를 친동생처럼 여겨주세요.” 어느새 무성은 제법 스승답게 지도자로서의 위엄을 갖추며 보리의 손을 그러쥐었다. 그런 무성을 바라보는 보리의 마음 한 구석에는 치원에게서 느꼈던 따스한 기운이 새롭게 움트고 있었다. 무성이 자기소개와 더불어 친부모님에 대하여 설명했다. 부모님의 선대는 옛 고구려 왕족의 후손이었다. 그런데 고구려가 멸망하자 가솔들을 이끌고 당나라로 건너와서 황족과 결혼을 하게 된 것이었다. 그러면서 비교적 높은 벼슬도 얻었다. 무성의 아버지는 무당파 방주고, 그의 어머니는 황실의 공주로서 혼인을 하여 무성을 낳은 것이었다. (131p)   황제의 명은 지체 없이 이어졌다. 그제야 고병 장군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때 고병 장군 옆에서 처음부터 일어나는 일을 기록하고 장군을 보좌하던 젊은 종사관도 함께 일어나 절도 있게 황제에게 예를 올렸다. 황제는 의례적으로 예를 받다가 그 젊은 종사관을 주목했다. “그대는 짐이 어디선가 본 듯한데?” 황제가 고개를 내밀며 젊은 사내를 주시했다. “폐하, 이 젊은이는 폐하께서 보위에 오르시던 건부원년乾符元年에 장원 급제를 했던 제 종사관 고운顧雲입니다.” 고병 장군이 웃으며 황제에게 고운을 소개했다. 그제야 황제는 무릎을 탁 치며 고개를 끄덕였다. (151p)   대장군은 최치원의 보고를 받고 명문의 격문을 써줄 것을 당부했다. 대장군의 명을 받은 치원은 호몽이 기다리는 신혼의 달콤한 꿈도 잊은 채 도덕경과 춘추전과 손자병법은 물론 과거 전쟁에 있었던 역사적인 인물들의 행적 중 싸우지 않고 이기는 제갈공명의 적벽전 등을 소상히 파악하였다. 바르게 살지 않고 나쁘게 살면 하늘·땅·사람 지하에 있는 모든 영혼들도 너를 죽일 것이며 이 세상 사람들 모두가 황소에게 벌을 내린다는 요지로 이 시대는 물론 후세대까지 최고의 격문이 될 수 있도록 심혈을 기울여 격황소서를 작성했다. (217p)   도덕경에 이르기를 ‘회오리바람은 하루아침을 가지 못하고 소낙비는 온종일을 갈 수 없다.’고 하였으니, 하늘의 조화도 오히려 오래가지 못하거늘 하물며 사람이 하는 일이랴. 또 듣지 못하였느냐? 춘추전에 이르기를 ‘하늘이 아직 나쁜 자를 놓아두는 것은 복되게 하려는 것이 아니고 그 죄악이 짙기를 기다려 벌을 내리려는 것이다.’라고 하였는데, 지금 너는 간사함을 감추고 흉악함을 숨겨서 죄악이 쌓이고 앙화가 가득하였음에도 위험한 것을 편안히 여기고 미혹되어 돌이킬 줄 모르니, 이른바 제비가 막 위에다 집을 짓고 막이 타오르는데도 제멋대로 날아드는 것과 같고, 물고기가 솥 속에서 너울거리지만 바로 삶아지는 꼴을 당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222p)   치원과 평소에 시를 주고받으며 우정을 돈독히 쌓아 왔던 문인들과 문사들도 모두 찾아왔다. 그들은 저마다 비단에 자신의 시를 쓰고 그림을 그려 기념품으로 들고 왔다. 그중에는 운하 지역에 사는 진사 양섭오만과 강동 제일의 시인으로 이미 문명을 떨치던 나은도 있었다. 나은은 치원보다 스물네 살이나 나이가 많아 이미 백발을 흩날리고 있었다. 치원은 이미 지천명의 나이가 되어서도 과거에 합격하지 못한 나은의 손을 잡고 안타까워했다. “형님은 이미 강동 제일의 시인입니다. 그까짓 진사가 뭐 그리 대단합니까? 진사에 대한 미련은 버리세요. 형님은 이미 강동을 넘어 천하제일의 시인이라는 것을 이 당나라에서 모르는 이가 또 있습니까? 문명으로 만족하십시오.” (285p)   한나라 황조의 경우 이웃 해동국에서는 해와 달 하늘과 땅 사람이 모두 하나라고 일찍이 주장하는 현자들이 많아 그곳 백성들을 이롭게 하는 홍익인간 사상이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이 옛날부터 전해오고 있음을 안 황제가 그곳에 가서 홍익인간 사상을 알아오라고 사신을 해동국에 보냈고 진나라 시황제도 불로초(일명 황칠 또는 황금 옻나무를 말함)를 구하기 위해 사람들을 해동국으로 보냈다는 것이 생각나서 나라와 나라 간에 백성들이 서로 교류하면서 입고 먹고 마시고 숨 쉬는 공기(長風)와 허공에 떠있는 해와 달은 똑같이 보고 있으므로 해와 달을 볼 때마다 그댈 생각할 것이라고 고운에게 말했다.(293p) (계속)   지은이 최진호는 경남 함양에서 태어나 동국대학교 경영대학원을 수료했다. 총무처 기획예산담당, 국세청 기획예산담당, 서울지방국세청 조사관리과 서기관, 국세청 인사계장 등을 지냈다. 현재는 탑코리아세무법인 대표이사 회장, 불교아카데미 이사, 한국세무사회 이사 등을 맡고 있으며, '우리말 불교경전'을 펴낸 바 있다. 변화는 많지만 하나로 꿰어 있고 무게가 무겁지만 가라앉지 않은(萬變一貫多重而不沈) 최치원에 대한 장편소설을 집필하게 되었다.   최치원의 사람 사랑과 나라 사랑을 널리 알리기 위한 일념(一念) 하나로 작가는 지난 30년 동안 유적지를 답사하고 연구한 자료를 가지고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해 소설화 작업을 해 책으로 펴냈다.    최진호 장편소설 '최치원' 1권 성인과의 만남(300p). 2권 통찰의 지혜(296p). 3권 꿈꾸는 별(324p). 4권 하늘의 비밀(332p). 5권 눈으로 볼 수 없는 세계(348p) / 도서출판 집사재 / 신국판(152×225) / 1쇄 발행일 2021년 02월 10일   문화저널21 최병국 기자
이세훈 2021-0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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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Classic, 2022년 창립 10주년 앞두고 발기인 간담회. 2012년 양평군립미술관에서 창립한 K-Classic 조직위원회가 내년 창립 10주년을 맞는다. 발기인인 모지선 화가, 임동창 작곡가, 탁계석 평론가 회장이 사업 시행을 위해 21일 낮 서울에서 만남을 가졌다.     ▲ 모지선 화가 임동창 작곡가 탁계석 평론가   이들은 지난 9년의 작업을 결산하고, 향후 K-Classic이 고통받는 지구촌 사람들에게 등불이 될 수 있도록 인간과 자연의 회복으로 새 출발의 기회로 삼자며, '기술'이 아닌 '근본'을 가르치는 예술과 교육으로 뉴노멀(New Normal)을 만들어가자고 했다.   그러면서 △K-클래식 성역화 △풍류학교 K-Conservatory △바람결 오케스트라 K-Orchestra 활성화 △비르투오소(Virtuoso) 대상(大賞) △해외 네트워크 플랫폼 구축 △창조적인 오피니언들의 살롱 콘서트 등을 마련하기로 했다. 또한 코로나 팬데믹이 끝나면 해외 명예감독들을 초청해 국제교류를 본격화하기로 하는 한편, 그의 실행을 위해 매달 모임을 정례화 할 것을 다짐했다.   문화저널21 마진우 기자
이세훈 2021-0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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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최치원 ②] 제1권 성인과의 만남. [편집자 주] 지난 2월 최치원 장편소설 5권이 발간되어 화제다. 소설 최치원은 30년 연구를 바탕으로 한 최진호 작가의 상상력과 뛰어난 문장력 등으로 그 시대 상황을 실제 상황처럼 생동감 있게 묘사함으로서 긴장감 속에 단숨에 읽혀지게 만들고 있다. 또한 책 곳곳에 방랑 식객 임지호 화백이 뿜어내는 최치원 정신을 형상화한 그림 삽입으로 묘미와 영감을 더해주고 있다. 최치원의 평화, 애민, 개혁사상은 현세에 더욱 빛을 발하고 있다. 이 책이 최치원 알리기의 등불이 되길 기대하면서, 본지는 6회에 걸쳐 책의 주요내용들을 소개한다.   고운 최치원 선생 후손이 펼쳐낸 전무후무 장편소설    고운 최치원 선생의 후손인 최진호 작가가 30여 년 동안 국내·외에 산재한 최치원 관련 자료 및 흔적 등을 총체적으로 수집·분석·연구하여 (장편)소설 ‘최치원’ 전5권을 지난 2월 출간했다. 총 1,600여 쪽에 이르는 가히 기념비적인 역작으로서 전무후무한 ‘최치원 장편소설(실록)’이라 아니 할 수 없다.      우선 이 책은 전래 또는 현전(現傳)하는 각종 사료들을 바탕으로 개혁적, 지성적인 목민관(정치인)으로서의 삶, 유·불·선에 더하여 풍류도까지 설파한 (종교)철학자 및 대문호로서의 각종 업적과, 더 나아가 따스하고 다정다감한 인간적인 면모까지 세련된 필치로 정갈하게 묘사함으로서 신비의 성에 갇혀 있던 그의 진면목을 새롭게 조명해 최치원 연구의 새로운 단초를 선사하고 있다.   이 소설이 우리들을 더욱 감동시키는 것은 견훤, 왕건, 궁예, 도선국사, 최승우, 최언위 등 신라 말에서 후삼국을 거쳐 고려개국까지의 급변상황을 인물중심으로 실감 있게 표현하였으며, 더하여 밀리엄 수녀와 아랍인 파루즈 왕자가 최치원과 같이 귀국하여 서라벌에 교회를 짓고 경교 전파 사실 등을 고증하였다는 점이다. 그 시대의 역사를 다시 보는 듯한 감동적인 상황이다. 이 소설이 널리 애독되어 위대한 선각자 최치원의 사상을 바르게 이해하고, 더 나아가 그 시대 격변의 역사를 회고·조응함으로서 역사 재인식의 계기가 되길 염원한다.   ▲ 최치원 제1권 성인과의 만남 최치원 제1권 성인과의 만남   차례   추천의 글 / 작가의 글 최치원의 행적도 / 등장인물   번개  쌍가락지  동남풍을 타다  황제의 도시  신비한 산(종남산)  고란초의 비밀  국자감  어사화를 꽂다  십팔 세의 진사  백거이白居易를 만나다  신선들이 머무는 곳   책 속에서   최치원은 31세 때 지은 진감선사비문 첫머리에서 “도는 사람에게서 멀리 있지 않고, 사람은 출신국에 따라 차이가 없다(道不遠人,人無異國)”고 설파하였다. 이 여덟 글자야말로 최치원의 학문과 사상을 연구하는데 열쇠가 된다. ‘도’道와 ‘인’人, 이것은 최치원의 평생에 걸친 화두다. (6p)   최치원 선생은 자기 한 사람의 부귀공명을 염두에 두지 않았습니다. 중앙정부의 현직顯職을 사양하고 지금의 함양군에 내려가 주민들과 함께 팔을 걷어붙이고 해마다 범람하는 강줄기를 바로잡고 지리산에서 캐온 나무를 심어 대관림(현재 상림숲)이라고 하는 인공조림장을 조성하였습니다. 천 년이 넘은 지금도 현지에 가면 상림이라고 하는 이름으로 그 숲이 보존되어 있습니다. 그는 행동하는 지성이었으며 미래를 향해 끊임없이 자신을 절차탁마切磋琢磨하였던 학자이며 또한 끈기 있게 창의와 개혁을 주장한 실천가였습니다. (16p)   “저 흑구렁이는 뭐야? 탑신에 숨어 있다가 벼락을 맞은 거 아니야? 아이고 징그러워!” 여인들의 소란스러움이 점점 커지더니 이내 웅성웅성 여기저기서 수군거리기 시작하였다. 이를 지켜 본 상좌승이 헛기침을 두어 번 하고 신도들 앞으로 나아갔다. 이윽고 상좌승의 기세에 눌린 신도들은 아무 말도 못하고 가녀린 숨소리만 뱉어 낼 따름이었다. “신도 여러분, 오늘 보신 일에 대해서 말씀을 삼가해 주세요. 궂은 날 벼락이 치는 것은 자연의 이치이고 이 또한 부처님의 뜻이기도 합니다. 벼락 소리에 놀란 구렁이가 잠시 혼절했을 것입니다. 별일 아니니까, 이제 다들 돌아가세요.” (34p)   고산 훈장은 이런 치원을 바라보며 매우 흐뭇해했다. 치원이 살짝 몸서리를 치며 술잔을 모두 비우고 나서 다시 잔을 훈장님께 드리자 술잔을 받아든 훈장님은 치원의 얼굴을 보며 천천히 말했다.   “네 아버지에게는 다 말해 두었다만 당나라에 가서 공부하는 게 좋겠다. 당나라에 지금 네 나이에 가는 것이 왜 좋은지 아느냐? 당나라 최고 교육기관인 국자감은 열네 살이면 들어갈 수가 있어. 지금 네가 열두 살이니까 가서 한 2년 정도 그 나라 말을 더욱더 익히며 공부를 한 뒤, 열네 살에 시험을 쳐서 들어갈 수 있다. 하지만 국자감 시험이 그리 만만치 않단다. 삼사三史, 오경五經, 제자백가諸子百家를 통달해야 겨우 합격을 기대해 볼 수가 있다. 그러니 미리미리 준비를 해야 할 것이야. 그리고 시험관 앞에서 구두시험을 통과하려면 당나라 말도 유창하게 익혀야 한단다...”(46p)                    ▲ ‘최치원 깨달음의 시작’을 이미지(형상)화시킨 임지호 화백 그림(소설 최치원 제1권 113p) “여름이 지나기 전에 떠나도록 해. 우리 6두품은 당나라 유학을 다녀오지 않으면 달리 방도가 없어. 진골 발뒤꿈치라도 잡고 뛰려면 당나라 유학을 다녀와야 해.” 견일은 몇 올 남지 않은 수염을 매만지며 연신 헛기침을 해댔다. “그런데 현준대사, 저렇게 어린 나이에 유학을 떠났다가 당나라가 좋아 아주 거기 눌러 앉거나 당나라 처자를 얻어 아주 서화자西化者(당의 국적을 얻어 눌러 앉는 사람들)가 되면 어찌할꼬?”   반야 부인의 억지스러움에 현준스님은 그저 웃음으로 화답할 수밖에 없었다. “어머님도 참, 어머님을 저리도 따르는 치원이가 서화자가 되겠습니까? 어머님 뵙고 싶어서라도 동귀자東歸者(본국으로 돌아오는 사람)가 될 겁니다. 그 점은 염려 놓으세요.” 그제야 반야 부인은 조금 안심하는 눈치였다. 가만히 누워서 이 이야기를 듣던 치원은 공연히 서러운 생각이 들며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손등으로 눈가에 흐르는 눈물을 훔치며 속으로 외쳤다. (81p)   막 서른 살이 된 최견일이 반야 부인을 만나게 된 인연은 부여의 고란사 불사 일을 하면서 알게 되었다. 따스한 봄의 햇살이 눈이 부시도록 빛을 내고, 백마강에서 불어오는 서늘한 강바람이 뭇 사내와 처자들의 가슴을 설레게 했다. 오전 내내 잠시라도 쉬지 않고 일을 하느라 온몸이 땀으로 뒤덮인 견일이 허기를 달래기 위해 점심밥을 먹고 있었다. 그때 요사채의 부엌에서 한 여인이 나와 다른 여인들을 지휘하고 있는 모습이 견일의 시야에 가득 들어왔다. (132p)   치원에게 이렇게 말하고 아버지는 홀연히 사라졌다. 깨어보니 꿈에서 아버지가 하신 말씀이 현실처럼 머릿속에 계속 남아 있었다. 나라와 백성을 사랑하고 이롭게 할 수 있는 학문은 무엇인가를 찾기 위해 국자감 도서실에 가서 공자 맹자의 인의예지 사상, 노자 장자의 자연 도리에 복종하는 도덕의 무위사상, 한비자의 법치주의 사상, 중국 옛 선현들이 남겨놓은 사상과 학문뿐만 아니라 서역학자들이 주장한 학문 서적까지 모두 공부하였다. 공부는 스스로 깨우쳐야 된다. 내가 주인공이 되어 중심의 자리에서 어느 곳에도 치우치지 아니하고 상대방을 바로 보고 바로 듣고 바로 믿어야 되는 것을 내 스스로 알아야 된다. 상대방이 잘못되고 틀린 것이 있더라도 틀린 것과 잘못된 원인을 찾아내는 것을 알아내는 것이 공부이다. (185p)   그날 밤, 치원은 모처럼 시원한 샘물로 몸을 씻으며 묵은 상념까지 모조리 털어내고 돌아왔다. 그리고는 오랜만에 현준스님과 찻상에 마주 앉아 향기로운 차를 마시며 그 향기에 흠뻑 젖어들며 그간의 이야기를 정겹게 풀어내고 있었다. 그때 밖에서 웬 인기척이 나는가 싶더니 잠시 후 뜻밖에도 최승우가 방문을 열며 들어섰다. 그의 입에서는 술 냄새가 진동하고 있었다. “오랜만입니다.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하시는군요! 종남산에서 몇 년 전에 뵙고 서라벌에서도 먼발치로 만났었죠?” 현준스님이 일어서며 최승우를 반갑게 맞이했다. “그랬었나요? 이 사람은 취생몽사하는 사람이라 기억력이 정확하지 않습니다.” (242p)   “장원 급제를 하셨으면 그대로 벼슬길로 나가시지 뭣 하러 이 깊은 산속까지 들어오셨나? 이거 원 황송해서 몸 둘 바를 모르겠군. 아이고, 진사 어르신 풍채가 훤하십니다.” 선사는 여전히 히죽히죽 웃으며 여유 있게 농을 던졌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치원이 먼저 앞으로 나서며 삼배를 올렸다. 현준스님과 호몽도 그 뒤에서 역시 삼배를 올렸다. (286p)   최치원 진사 계십니까? 최치원 진사님, 어디 계세요?” 무척이나 다급한 목소리였다. “여기 있소. 뉘시오?” 치원이 사내 쪽을 향해 소리를 질렀다. 치원의 목소리를 들은 사내가 말에서 내려 급하게 뛰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아, 잘 찾아왔군요. 예부에서 나왔습니다. 최치원 진사님의 발령장을 가지고 왔습니다. 어쩌면 이렇게 깊은 산중에 계십니까?” 사내는 숨을 몰아쉬며 치원에게 발령장을 전했다. 치원은 짙은 어둠 속에서 호몽이 들고 있는 횃불에 의지한 채 사내가 주고 간 발령장을 펼쳐 들었다. (300p)  (계속)   지은이 최진호는 경남 함양에서 태어나 동국대학교 경영대학원을 수료했다. 총무처 기획예산담당, 국세청 기획예산담당, 서울지방국세청 조사관리과 서기관, 국세청 인사계장 등을 지냈다. 현재는 탑코리아세무법인 대표이사 회장, 불교아카데미 이사, 한국세무사회 이사 등을 맡고 있으며, '우리말 불교경전'을 펴낸 바 있다. 변화는 많지만 하나로 꿰어 있고 무게가 무겁지만 가라앉지 않은(萬變一貫多重而不沈) 최치원에 대한 장편소설을 집필하게 되었다.   최치원의 사람 사랑과 나라 사랑을 널리 알리기 위한 일념(一念) 하나로 작가는 지난 30년 동안 유적지를 답사하고 연구한 자료를 가지고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해 소설화 작업을 해 책으로 펴냈다.    최진호 장편소설 '최치원' 1권 성인과의 만남(300p). 2권 통찰의 지혜(296p). 3권 꿈꾸는 별(324p). 4권 하늘의 비밀(332p). 5권 눈으로 볼 수 없는 세계(348p) / 도서출판 집사재 / 신국판(152×225) / 1쇄 발행일 2021년 02월 10일   문화저널21 최병국 기자
이세훈 2021-0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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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최치원 ①] ‘시대가 최치원을 부른다’. [편집자 주] 지난 2월 최치원 장편소설 5권이 발간되어 화제다. 소설 최치원은 30년 연구를 바탕으로 한 최진호 작가의 상상력과 뛰어난 문장력 등으로 그 시대 상황을 실제 상황처럼 생동감 있게 묘사함으로서 긴장감 속에 단숨에 읽혀지게 만들고 있다. 또한 책 곳곳에 방랑 식객 임지호 화백이 뿜어내는 최치원 정신을 형상화한 그림 삽입으로 묘미와 영감을 더해주고 있다. 최치원의 평화, 애민, 개혁사상은 현세에 더욱 빛을 발하고 있다. 이 책이 최치원 알리기의 등불이 되길 기대하면서, 본지는 6회에 걸쳐 책의 주요내용들을 소개한다.   ▲ 소설 최치원(전5권) 이 시대가 최치원을 부르고 있다!   국가와 국민이 자유스럽고 평등하게 잘 살 수 있는 태평성대 시대를 추구하기 위하여 한평생 ‘말과 행동이 초지일관된 삶’의 실천으로 95세까지 신선처럼 살다간 학자이며 탁월한 지도자인 고운 최치원 선생을 이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널리 알리기 위한 일환으로 쓴 최진호의 장편소설 △최치원 1 성인과의 만남'△최치원 2 통찰의 지혜 △최치원 3 꿈꾸는 별 △최치원 4 하늘의 비밀 △최치원 5 눈으로 볼 수 없는 세계가 지난 2월 출간되어 화제를 뿌리고 있다.    당나라에 유학하면서 당나라의 몰락을 목도하고 새로운 세상의 태동기를 예감한 최치원. 골품제 나라인 신라에 시무십조(時務十條)를 조정에 올리나 그 실현을 보지 못했고, 백성들에게 그의 철학과 사상을 널리 전파시키고 신화처럼 사라진 그의 이야기를 통해 미래에 대한 총체적인 밑그림을 그릴 수 있는 하나의 거대한 세계를 제시한다.   ▲ 최치원 행적도(소설 최치원 제1권 19〜20p)   국익과 우리 모두의 올바른 가치관을 위해 노력해온 최치원의 삶을 그리다!   이 책은 최치원의 학문 수준과 사상적 경지가 대하역사장편소설로 펼쳐진다. 최치원의 평화주의와 애국애민사상 중 시무십조 사법개혁은 지금도 절실한 내용이다. 최진호 작가는 30년 동안 최치원을 연구하고 유적지를 답사해 소설화했다.   최치원의 학문과 사상에 대한 연구는 어느 정도 축적되었다고 본다. 그렇지만 그의 삶을 속속들이 파헤친 경우는 아직 없다. 최치원의 삶을 다룬 전기도 없고 평전도 없고 소설도 찾기 힘들다. 제대로 된 전기가 없으니 평전이 나올 리 없다. 전기와 평전이 없는 상태에서 소설이 나온다 한들 작가의 상상력에만 매달릴 수밖에 없지 않을까?    이러한 상황에서 최치원의 일생이 소설로 엮어지다니 믿기 어려운 일이 현실로 나타났다. 작가 최진호의 장편소설 '최치원(전5권)'이 그것이다. 시대가 최치원을 부른다는 말이 겉치레가 아님을 입증이라도 해 주는 것 같았다. 사료 고증을 통해 제한적으로 엿볼 수밖에 없었던 최치원의 일생이 최진호 작가의 30년 연구에 더해 추리력과 상상력에 힘입어 생동감 있게, 사실감 있게 소설화되었다. 실타래같이 얽히고설킨 당시의 시대배경을 종횡무진 서술하면서도 작가 나름의 역사관을 통해 헝클어지지 않게 풀어냈다. 최치원의 복잡다단한 생애 역시 실마리를 잘 풀어내고 마디를 잘 지어가면서, 독자에게 전하려는 메시지도 분명히 했다. 한마디로 변화가 많지만 하나로 꿰어있고, 무게가 무겁지만 가라앉지 않은데 특성이 있다고 보겠다.   신라에서 건너간 18세 소년이 당나라 희종 황제의 어전시에서 장원 급제했다는 사실은 기적에 가까운 일이었다. 그 후 당나라에서 관리가 된 20세의 젊은 최치원은 지금의 남경 근처인 율수현 임지에 근무하면서 당시 힘없고 어려움에 처해 강물에 투신하여 죽은 두 자매의 무덤 앞에서 그들의 영혼을 달래기 위해 시를 써주었을 만큼 진정한 목민관의 자세를 보여 줌으로써 현실을 어렵게 살아가는 백성에게 더욱더 잘해 보겠다는 의지를 보여 주었다.   얼마 후 당나라가 전란에 휩싸여 있을 때는 붓 한 자루를 들고 적장 황소에게 부당함을 지적하여 끝내 그를 패퇴시킨 공로를 당 조정에서도 높이 평가하였고, 황제는 자금어대를 하사하면서 언제 어느 때나 황제 알현을 허락하였다.   고국 신라에 돌아와서는 왕족과 호족이 발호하여 백성을 착취하며 기근 속에서 허덕이는 농민들에게 과중한 세금을 매기는 신라 말기의 조정을 향하여 일대개혁을 촉구하였다. 지금 정확하게 전해 내려오진 않지만 시무십조라는 열 가지 개혁안을 제시하며 기득권층에게 자기혁신을 끊임없이 권고하였다.   그는 유교와 경전에 통달하여 공맹의 사상을 그 누구보다도 정확히 알고 있었지만, 유교라는 한정된 경계에 머물러 있지 않았다. 불교의 고승들과 끊임없이 교제하며 고승들을 기리는 비문을 썼을 뿐만 아니라 사찰을 위해서도 불후의 명문장을 손수 써주었다. 그가 남긴 깊은 산 속의 4개의 비문은 ‘사산비명’이라 하여 천 년을 견뎌왔지만 그 내용이 지극히 어려워 천 년 동안이나 많은 학자의 연구대상이 되어왔다.   역사소설에서는 사실과 상상력의 구분이 애매하다. 일정하게 사실에 근거하지 않으면 역사소설이라 하기 어렵고 상상력이 없으면 굳이 소설이라 할 이유가 없다. 이 소설에서도 독자의 상상력과 흥미를 유발하기 위해 소설적 요소가 가미되었다. 진성여왕이 사석에서 최치원을 ‘오라버니’라 부르고 평소에 연정(戀情)을 품었다고 고백한 것을 누가 사실로 곧이듣겠는가? 또 어렸을 때 공부했던 서당 훈장의 딸 보리(菩提)가 역모에 연루되어 곤경에 처해 있다는 말을 들은 최치원이 당나라에서 도교 수련을 하던 동문들과 구출대를 조직, 신라로 잠입하여 보리를 구출한 것이라든지, 구출된 보리가 종남산(終南山) 자오곡(子午谷)과 숭산(嵩山) 소림사(小林寺)를 오가며 무술을 연마하다가 나중에 복수의 칼날을 마음속에 품고 후백제 견훤(甄萱)의 부인이 된 것은 극적 효과를 노린 것이라 해도 좋다.    독자가 이 소설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최치원의 정신세계다. 소설이기에 이를 두드러지게 표현하기는 어렵지만 작가의 역량에 따라 ‘은근한 외침’, ‘다정한 유도’는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본다. 작가는 전반적으로 최치원의 애국심, 개혁 사상에 초점을 맞추어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그러는 가운데 사회 통합을 ‘시대적 화두’로 제시하였다.   최치원이 훌륭한 사상가이었음은 그가 유교나 불교 그리고 도교에 통달해 있어 삼교회통을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그 세 가지 사상에만 머물지 않고 거기에 하나를 더한 것, 즉 우주질서와 하나로 통하는 풍류도를 스스로 창안하였다는 점이다. 그는 언제나 나라와 민족을 생각하는 이국이민(利國利民)의 경지를 끊임없이 추구하면서도 한 가지 도(道)만을 고집하지 않았고 심지어는 출신성분이나 국적에 따라 사람을 차별하거나 구분을 하여서는 아니 된다고 하였다. 그래서 그는 ‘도불원인(道不遠人), 인무이국(人無異國)’이라는 중요한 가르침을 진감선사비문 첫머리에 남겼다.    지난 2013년 박근혜 대통령이 중국을 방문하여 시진핑 국가주석을 만났을 때, 시주석은 뜻밖에도 최치원이 쓴 ‘범해(泛海)’라는 시로 말문을 열었다. 한·중 간의 교류는 이미 천 년도 넘는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고 그 아득한 시기에도 젊은이들은 바다를 건너 교류하였으며 서로의 국익을 위해 경쟁했을 뿐만 아니라 요즘 우리가 말하는 글로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머리를 맞대었다.    우리의 젊은이들이 삼국지나 세계 위인전을 읽기 전에 1,100여 년 전의 시공 속에서도 국익과 우리 모두의 올바른 가치관을 위해 그토록 노력하고 자신의 모든 것을 내던졌던 ‘최치원 1, 2, 3, 4, 5권’을 읽어 얻은 지식을 통해서 자기가 잘할 수 있는 능력을 개발함은 물론 창조의 힘을 갖추어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진정한 마음으로 서로서로 사랑하게 되었으면 좋겠다고 작가는 말하고 있다.    ▲ 최치원의 ‘인재 발탁과 인사 혁신’ 이념을 이미지(형상)화시킨 임지호 화백 그림(소설 최치원 제1권 220〜221p)   최치원 1, 2, 3, 4, 5권 소설에는 대사상가이자 대정치가이기도 한 최치원을 비롯해 헌강왕, 진성여왕, 김가기, 최승우, 최언위, 궁예, 견훤, 왕건, 도선국사, 선종과 당나라의 고병 장군, 고운, 배찬, 두순학, 황소, 왕선지 등 역사상 흥미로운 인물들이 함께 등장해 이야기를 더욱 풍성하게 만들어준다.   천 년 전이나 오늘날이나 또는 앞날에 있어서도, 나라에 바른 정책이 없어서가 아니라 그것을 실천하고자 하는 제도와 정신이 문제라는 점을 역사와 이 책을 통해서 배울 수 있다. 최치원을 소설로 읽는 것은 곧 딱딱한 역사에 피를 돌게 하는 작업이기도 하면서 우리 또한 역사 속으로 깊은 탐험을 가는 일이다. 어느 정도는 우리 모두 최치원의 후예임을 이 소설은 여실히 보여 주고 있다.    지은이 최진호는   지은이 최진호는 경남 함양에서 태어나 동국대학교 경영대학원을 수료했다. 총무처 기획예산담당, 국세청 기획예산담당, 서울지방국세청 조사관리과 서기관, 국세청 인사계장 등을 지냈다. 현재는 탑코리아세무법인 대표이사 회장, 불교아카데미 이사, 한국세무사회 이사 등을 맡고 있으며, '우리말 불교경전'을 펴낸 바 있다. 변화는 많지만 하나로 꿰어 있고 무게가 무겁지만 가라앉지 않은(萬變一貫多重而不沈) 최치원에 대한 장편소설을 집필하게 되었다.   최치원의 사람 사랑과 나라 사랑을 널리 알리기 위한 일념(一念) 하나로 작가는 지난 30년 동안 유적지를 답사하고 연구한 자료를 가지고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해 소설화 작업을 해 책으로 펴냈다.    ▲ 장편소설 ' 최치원'' 저자 최진호  © 문화저널21 DB / 자료사진 추천사   이 시대가 최치원을 부르고 있다! 최치원은 9~10세기를 사는 동안 동아시아지역의 다양성과 국제적 개방성을 공문서와 사적인 글들을 모아서 만든 ‘계원필경’을 비롯하여 ‘진감선사비문’ 등 사상에 대하여 많은 독자들이 쉽게 다가갈 수 있는 문장으로 드라마틱하게 집필하였으므로 그 시대의 삶과 재미를 함께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최광식 고려대 명예교수 ·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중국에서의 유학과 문화 체험을 통해 우리의 역사와 문화를 해석하였고, 신라가 중국의 주변국이 아니라 동아시아문명의 중심국이었다는 결론을 얻었다. 최치원은 동인의식(東人意識)을 바탕으로 우리 민족의 정체성을 찾고 인류의 보편문화를 추구했던 21세기형 인물이었다. 우리는 그동안 그가 남긴 문장의 향기에 취해 진면목을 보지 못하였다. 신비(神秘)를 벗겨야 우리 곁에 다가올 수 있는데도 신비의 성채를 쌓는 데만 열중하였다. 보호색을 지우고 배경색을 넣으니 이제야 최치원의 학문 수준과 사상적 경지가 새롭게 우리 곁으로 성큼 다가오고 있다. (최영성 국립한국전통문화대학교 교수 · 철학박사)   소설의 출간을 경하하며, 우리들이 진정으로 갈망하는 문화국가 가치창조를 위해 최치원 선생의 평화주의 및 애국애민사상 중 시무십조 사법개혁이 널리 알려지기를 바라면서 일독을 권합니다. (장석용 시인 · 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의장)   이 흐린 시대, 흐린 세상에 즈음하여 최진호 선생의 필력을 빌어 '최치원'이라는 작품 5권이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이를 참으로 기쁘게 생각하며 소설로 최치원을 읽는 재미를 저처럼 함께 느끼시기를 바랍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소설을 필독해 주기를 소망합니다. (이외수 소설가)    최진호 장편소설 '최치원' 1권 성인과의 만남(300p). 2권 통찰의 지혜(296p). 3권 꿈꾸는 별(324p). 4권 하늘의 비밀(332p). 5권 눈으로 볼 수 없는 세계(348p) / 도서출판 집사재 / 신국판(152×225) / 1쇄 발행일 2021년 02월 10일   문화저널21 최병국 기자
이세훈 2021-0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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