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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인 칼럼] S. O. B

이세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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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로널드 레이건(R. Reagan) 전 대통령 때의 일이다. 

당시 한 외신기사를 읽고 필자는 잠시 깊은 흥미를 느꼈던 적이 있다. 

 

기사의 내용은, 레이건 대통령과 기자회견을 위해 나와 있던 기자들 간의 욕설 시비였는데 그 결과가 매우 재미있게 처리되어 역시 유머와 위트가 넘치는 나라 사람들이라는생각이 들었다.

 

발단은 레이건 대통령이 기자회견 도중 난감한 질문을 퍼붓는 기자들에게 혼자만의 조그만 목소리로 "S.O.B"(Son of Bitch)라고 중얼거렸는데 불행히도 그것이 마이크를 통해 기자들에게 전달된 것이었다.

 

일반적으로 미국에서 흔히 사용하는 ‘Son of Bitch’는 사전적 의미로 ‘Son’은 ‘아들’, ‘Bitch’는 ‘암캐’를 뜻하는 단어로, 우리말로는 ‘개XX’라는 욕설쯤으로 번역할 수 있을 것이다.

 

아무튼 대통령의 입장에서는 끈질긴 기자들의 질문 공세가 짜증스러웠겠지만 혼자 슬그머니 흘려버려야 할 상스러운 욕설이 그만 기자들의 귀에까지 들리고 말았으니 일이 매우 난처하게 되어버린 것이다.

 

이에 분개한 기자들이 며칠 후 대통령에게 공개적으로 티셔츠(T-shirt)를 선물했는데 셔츠의 앞면에는 며칠 전 대통령이 내뱉은 욕설인 "S.O.B"라는 글자가 큼직하게 새겨져 있었다. 이는 대통령의 욕설에 대한 기자들의 항의 시위였다.

 

▲ 로널드 레이건 미국 제40대 대통령

 

참으로 대통령에게 있어서는 일대 위기의 순간이었다. 

 

기자들은 자칫 대통령이 이에 대해 화를 낸다든지 잘못 맞대응을 할 경우 일제히 대통령에 대한 비난 기사를 쓰려고 단단히 벼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당시 레이건 대통령의 모습은 마치 서커스의 위태로운 줄타기 상황을 보는 듯 매우 아슬아슬했다.

 

그런데 그때 레이건 대통령은 빙그레 웃으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S.O.B라..... 이것은 당연히 'Saving of Budget(예산 절약)'이라는 뜻이겠죠? 기자 여러분의 충고를 늘 염두에 두겠습니다.“

 

다음날 언론에는 아무런 기사도 실리지 않았다.

 

만일 우리나라 대통령이 레이건 대통령과 같이 기자들 앞에서 이 같은 실언을 했다면 과연 어찌 되었을까?.....

 

필자는 진정한 유머란 바로 이런 여유에서 생겨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대통령의 실언에 대한 기자들의 항의 방법도 그렇거니와, 대통령의 지혜롭고 유머러스한 처신도 칭찬받을만한 수준 높은 모습이었다.

 

이 일을 기억하며 우리의 현실을 돌아보면 그 저급한 수준에 부끄러움을 금할 수 없다.

 

요즘 세간에 막말이 난무한다. 겁도, 부끄러움도 모르고 쏟아 낸다. 특히 대통령에 대한 언사가 도를 넘어 상스럽기까지 하다. 

 

몇몇 정치인들은 차치(且置)하고라도 일부 언론사 기자들의 기사를 비롯하여 방송에 출연하는 패널들은 좌, 우로 나뉘어 유치한 말장난으로 일관하고 있으며, 이에 댓글을 붙이는 일반 국민까지 입에 담을 수 없는 욕설로 국가 원수인 대통령을 비난, 비하하는 성숙되지 못한 모습들이 생각 있는 이들의 마음을 암울하게 하고 있다.

 

이런 상황이고 보니 과거 취임한 지 100일도 되지 않아 "대통령직 못 해 먹겠다"라고 한 모 전직 대통령의 치기 어린 발언에 일견 연민(憐憫)이 느껴지기도 한다. 물론 정상적인 품격을 갖춘 대통령으로서는 절대로 발설해서는 안 되는 표현이지만 이쯤 되면 대한민국 대통령으로서 누군들 한 번쯤 이런 생각이 들지 않겠는가?

 

요즘 최근까지 여당 대표였던 이준석의 대통령을 향한 분노가 하늘을 찌른다. 그것도 당 대표로서의 공적 분노를 넘어 대통령에 대한 경멸과 비난과 모욕적인 언사를 사적 분노에 실어 마구 쏟아 내고 있다.

 

심지어 지난 8월 20일 자 매일신문은 “이 전 대표는 기자회견 중에 ‘이XX, 저XX’하는 사람을 대통령 만들기 위해 당 대표로서 열심히 뛰어야 했다”면서 윤석열 대통령이 자신을 사석에서 “이새끼, 저새끼 했다고 폭로했습니다”라고 보도했다. 

 

앞서 미국의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과 기자들 간에 있었던 이야기를 비교해볼 때 이는 우리나라의 유치하고 척박한 정치 현실을 시사하는 듯하다. 

 

대통령의 실정(失政), 필자도 모르는바 아니다. 그러나 대통령에 대한 개인적인 호불호를 떠나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우리가 선출한 국가원수인 대통령에게 함부로 돌을 던지지 않는 이유는 자칫 그 돌에 맞아 국가가 피해를 입고, 세계 속에서 선진 대한민국의 위상이 손상되는 더 큰 누를 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침묵하는 다수가 생각이 없거나 말을 할 줄 몰라서가 아님을 알고, 더 이상 무례히 행치 않기를 촉구한다.

 

잡다한 족속들이 얽혀 사는 미국인들도 이렇듯 멋지게 살아가는데 족보 있는 단일 배달민족으로 자처하는 우리네 삶의 모습은 왜 이리도 추한지 모르겠다. 

 

도대체 그래서 어쩌자는 건지..... 

 

지난날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라고 한 이승만 전 대통령의 명언은 일찍이 '화합'보다 '분열’을 더 좋아하는 우리 민족성에 대한 정확한 이해에서 한 걱정스러운 교훈이라 여겨진다.

 

혹, 남북통일이 지체되고 있는 것도 이러한 우리의 민족성 때문은 아닐런지? 

 

아무튼 그러한 위기의 상황 속에서도 재치와 위트로 여유 있는 모습을 잃지 않고 위기를 잘 넘기는 미국의 대통령과 국민들의 품성이 너무도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앞서 소개한 레이건 대통령의 실화는 항상 서로를 존중하며 유머와 위트를 잃지 않고 살아가는 미국의 대통령과 기자들 간의 마음 훈훈한 이야기다.

 

이 이야기가 우리 대한민국의 이야기가 되었으면 정말 좋겠다.

 

강 인

예술평론가, 사단법인 카프코리아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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