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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랜드 박사의 맛 이야기 – 커피 편(4) 일본이 만든 토라자 커피

이세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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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 가장 유명한 커피는 무엇일까? 정답이 없거나 여러 개 있을 수 있는 어리석은 질문일 수도 있다. 하지만 토라자 커피(Toraja Coffee, トラジャ コーヒー)라고 대답한다면 결코 엉뚱하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바로 인도네시아산이다. 한때 일본 고급 커피 원두 시장에서 최고 수준의 점유율을 자랑했다. 

 

왜 토라자 커피가 유명한가? 오랜 세월 동안 일본인에게 맞는 커피 품종을 개발하고, 지역의 문화적 특성을 활용해서 효과적으로 브랜드화 했다.

 

품질은 먼저 술라웨시(Sulawesi) 남부 고원지대 땅의 특성을 잘 활용했다. 재배와 수확은 독특한 문화를 가진 현지인들과 협업으로 진행했다. 공동투자 형태의 조합을 만들고, 기술 지도와 관리를 통한 도급방식으로 생산 품질의 일관성과 차별성을 유지했다.

 

그다음으로는 브랜드화 하는 것인데, 자국과의 연관성과 현지 문화의 독특성을 활용했다. 먼저 일본과의 연관성이다. 2차 세계대전에 패망한 일본이 퇴각했다가 다시 들어가 성공적으로 개발에 완성한 것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일본인들의 자국 정서에 맞았다. 해당 지역은 네덜란드가 수백 년 전부터 커피 농장의 적지로 개발한 고원 커피 농업지대다.

 

현지 문화의 독특성을 살펴보자. 대다수의 명품 커피 브랜드들은 지역명을 붙여 부른다. 하지만, 토라자(Toraja)는 부족의 명칭이다. ‘토라자’란 ‘고산지대에 사는 사람’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따라서 일반적으로 지칭하는 토라자 커피는 ‘토라자인의 땅(Tana Toraja, 타나 토라자)이라는 부족 명칭에서 나왔다. 토라자 부족은 독특한 문화, 특히 장례문화로 유명하다. 토라자 전체 인구는 총 약 1백만명 정도 되며, 절반 정도가 술라웨시 토라자 지역에 살고 있다. 

 

토라자 커피는 18,000여 개로 구성된 인도네시아에서 4번째로 큰 섬 술라웨시(Sulawesi) 남부 내륙지방 고산지대에서 생산된다. 참고로 술라웨시는 남한 땅의 약 1.8배 정도로 크지만, 인구는 남한의 40%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 예복은 입은 토라자 소녀들. 피부색이 상대적으로 밝은 편이다. 세계적으로도 매우 독특한 장례문화를 가지고 있는 토라자 청소년들이 장례식에 참여한 모습이다. 문상하러 온 손님들에게 1주일 이상 하루 4~5끼의 식사와 간식 등을 제공한다.   © 이창현

 

▲ 토라자의 무덤. 바위 절벽을 활용한다. 주로 가족 단위로 한꺼번에 수십 개의 두골을 수습한다. 나무상자는 관이며 그 위에 놓인 것이 두골이다.  © 이창현

 

▲ 인도네시아 커피 협회 사무실에 걸린 인도네시아 커피의 분포도 그림이다. ㉮부분의 영어의 K자와 모양이 유사한 섬이 바로 술라웨시다. 붉은색으로 토라자와 칼로시(Toraja & Kalosi) 커피라고 적혀 있다 ㉯ 섬이 보르네오라는 세계에서 3번째로 큰 섬이며, 세계에서 유일하게 3개 국가(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브루나이)가 공동으로 소유하고 있다. ㉰ 섬이 지난 호에 설명한 발리섬이다. 역시 붉은색으로 낀따마니(Kintamani)라고 적혀 있다.  © 이창현


필자가 토라자 지역에 방문했을 때 일본, 미국, 호주 등과 계약재배한 커피생두는 구경조차 할 수 없었다. 수확하자마자 완전히 다 팔렸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왜 토라자 커피를 좋아할까? 

 

다들 맛과 향이 좋다고들 한다. 토라자 커피는 열대 우림 고산지대인 토라자 지역에서 자라는데, 부드럽고 풍부한 산미(살짝 시큼한 맛)와 약간 쌉싸름한 쓴맛과 달콤한 과일 향의 감칠맛이 살짝 감돈다고 표현한다. 

 

이런 맛과 향에 대한 평가와 분류를 ‘커피 향미도(香味圖, The Coffee Taster's Flavor Wheel)’를 기준으로 하는데 나라마다, 기업마다 조금씩 다를 수 있다. 기본적으로는 미국 스페셜티 커피 협회(SCA)의 것을 원용하는 경우가 많다. 우리나라 커피 관련 서적에 보면 ‘커피 플레이버 휠’ 등으로 그냥 영어 발음대로 표기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영어로 맛은 플레이버(Flavor)이며 향은 아로마(Aroma)인데 보통 ‘커피에서 맛’이라고 할 때는 맛과 향을 동시에 의미하기도 한다. 가끔 ‘후레바’라고 발음하기도 하는데 일본인들의 영어 발음을 따온 것이다. 

 

자칭 커피 전문가들-타칭 커피 전문가는 제외하고-는 ‘사대에 빠졌다’라는 지적을 받더라도 영어식 발음으로 표기하려는 경향이 있다. 아마도 영어가 갖는 사회적, 상업적, 위계적, 특성인 ‘다소 더 고급스럽고 선진화된 이미지’를 얻기 위해서일 것이다. 필자는 영어식 발음을 단순히 우리말로 옮기는 것은 자신들의 부족한 실력이나 노력 혹은 선도자의 의무를 저버리고, 영어식 표현이 갖는 후광 효과만을 활용하기 위한 바람직하지 못한 행위로 보인다. 

 

그래서 비록 거친 번역이지만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커피 향미도(香味圖)’로 표기했다. 인터넷을 찾아보면 ‘맛의 지도’, ‘맛 분류도’, 향미 분류표‘ 등으로 표기하기도 하는데 이런 일은 우리나라 커피협회 등에서 표준화했으면 좋겠다. 

 

▲ 이 커피 향미도는 지난번에도 소개했듯이 와인의 맛 품질평가와 분류에서 나왔다. 추후에 뛰어난 미각과 마케팅 적 감각을 가진 사람이 나타나 우리나라 김치를 이런 향미도로 분류해서 세계화할 수 있다면 어떨까 하는 상상도 해 본다. 인도네시아 커피 협회 사무실 벽에 그려진 커피 향미도(The Coffee Taster's Flavor Wheel) 다.  © 이창현

 

인도네시아에 적정규모 이상으로 정착한 외국인 집단이라면 중국인, 네덜란드인, 일본인, 한국인 등의 순이나, 현재 기준 규모 면에서는 중국인(화교)가 압도적이며, 그다음이 일본, 한국인 순서다. 인도네시아 이민국의 취업비자를 통한 국가 통계를 보면 일본인이 한국보다 40%쯤 많지만, 현지에서 느끼는 체감상 일본인 관련 기업, 식당, 서비스점 등은 한국의 3배쯤 많아 보인다.

 

다수의 일본인을 위한 상점이 있는데, 우리나라 더 먼저 산업화에 성공했으며, 상품의 포장 기술을 발전시킨 덕분에 선물용으로 무난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일본인들이 주로 애용하는 상점에 가 보면 많은 종류의 커피가 진열되어 있는데, 그중에 토라자 커피가 압도적으로 많다.

 

▲ 일본인들을 주고객층으로 하는 자카르타 소재 슈퍼에 전시된 각종 커피. 눈이 잘 가는 매대의 가장 좋은 위치에는 루왁(Luwak) 커피가 전시되어 있고 바로 그 아래에는 토라자 커피가 전시되어 있다. 한옥 지붕처럼 U자형 지붕을 가진 로고는 토라자의 상징적인 건축물인 통코난(tongkonan, 똥꼬난) 이다. 발음은 똥꼬난처럼 들리는데, 한글 표기법을 원용하여 통코난으로 하였다. 토라자(Toraja) 역시 또라자로 발음하는 것처럼 들리기도 한다. 인도네시아어에서는 토와 또의 발음 간 경계가 우리나라와 달리 분명하지 않다. 위 사진의 토라코(TOARCO)는 토라자에서 가장 상업화에 성공한 기업 상표의 하나다.  © 이창현


토라자 커피는 상징으로 토라자 주민들의 건축물인 통코난(U자형 지붕을 가진 건축물)을 차용했는데, 토라자라는 주민들의 독특한 역사와 문화, 전통 등 풍부한 이야깃거리를 브랜드마케팅의 오브제로 활용하고자 한 것이다. 이 건축물의 디자인은 매우 독특하여 자카르타 인근 박물관 등에서도 쉽게 볼 수 있다.

 

▲ 토라자의 장례식과 전통가옥 통코난. 토라자인들의 장례식은 매우 화려하고 일주일 이상 지속되며, 엄청난 돈이 들어간다. 그래서 수많은 연구논문과 다큐멘터리 등이 제작되어 있다. 각 가문 중심으로 치러지는 장례식에 너무나 큰 비용이 들어가기에 가문이 파산하기도 한다. 그래서 인도네시아 정부는 1년에 1달간만 전통 장례식을 할 수 있도록 허락했다.  © 이창현

 

간단히 토라자 종족에 대해서 설명하자면, 통코난이란 독특한 지붕 모양은 배를 상징하는데, 일설에 배를 타고 인도차이나반도에서 건너온 그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현지의 강력한 부족을 피해 해변에서 고산지대로 이주하면서 자신들의 과거를 잊지 않으려고 배를 상징하는 지붕을 만들었다고 한다. 

 

▲ 또한 교육열이 매우 뛰어나 소수 부족임에도 불구하고 인도네시아 교육계에 다양한 기여를 하고 있다. 비교적 최근의 건축재료인 양철로 만들어진 지붕도 통코난의 모양을 나타냈다.  © 이창현

 

토라자인들의 전통 종교는 힌두교도로 분류한다. 조상신을 섬기는 정령신앙 혹은 다신교, 혹은 아주 독특한 하나의 독립적인 종교로도 볼 수 있는데 인도네시아 관료들이나 다수의 학자들이 힌두교로 분류하는 이유의 하나는 인도네시아의 법 때문이다. 

 

인도네시아는 모든 국민이 하나의 종교를 갖게끔 규정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남자와 여자를 구분하여 주민등록상 표기를 하는 것처럼 신분증에 종교를 적어야 한다. 그 이유는 현대 인도네시아의 탄생 및 정치와 깊은 관련이 있는데, 무신론자인 공산주의를 배격하기 위함이다. 

 

토라자 부호의 장례식에 초대받아 참견할 기회가 있었는데, 고인은 광산 등을 소유한 지체가 높은 왕족 노부인이었다. 인근 친인척이나 부자들은 물소를 부조하고, 보통 사람들은 돼지를 낸다. 수일간 지속되는 장례식장에서 소와 돼지를 잡아 다른 음식과 함께 수백 명의 문상객들을 며칠 동안 대접한다. 

 

보통의 진회색 물소의 가격은 우리나라 돈으로 30만 원~100만 원 정도 하는데, 털과 피부가 흰 알비노 물소의 경우 한 마리에 약 40,000달러로 우리나라 돈으로 치면 5,000만 원 정도다. 이 장례식에서 총 잡는 소의 숫자만 40여 마리라고 했으며, 알비노 물소는 2마리였다. 당시 주민들이 한 달 임금이 약 25만 원 정도이니 얼마나 성대한 장례식인지 짐작이 간다. 가난한 사람의 경우 몇 대의 유골을 모아 뒀다가 한꺼번에 장례를 치르기도 한다.

 

▲ 장례식장에 메어 있는 2마리의 흰색 물소. 두부와 족부가 흰색이다. 물소의 신체 부위에 흰색이 얼마나 차지하고 있는지가 가격 결정에 가장 큰 요인이며, 두 번째는 몸집의 크기다.  © 이창현

 

발리나 인도의 힌두교 계급은 크게 4개를 기준으로 수백 개의 카스트가 있다고 하는데, 토라자의 계급은 2개로 나뉘어 있었으며, 전체 인구의 절반 정도가 상위 계급이고, 나머지 절반은 하위 계급인데 서로 결혼도 할 수 있으며 돈이 아주 많거나 큰 업적을 세우면 상위 계급으로 올라갈 수 있다고 했다.

 

힌두교의 계급 제도가 직업과 직업윤리를 규정한 것이 많았는데, 토라자의 계급 역시 직업과 관련이 깊었으며, 스스로 맡은 일을 충실히 하게끔 유도하는 문화였다. 이런 노동 문화가 좋은 커피생두를 생산하는 데 일조했다고 판단되었다. 

 

토라자의 통코난을 상징으로 하는 토라자 커피는 화려하고도 매우 이색적인 장례문화, 장례와 죽음에 대한 인식, 종족적 특성을 브랜드 마케팅적 요소로 잘 활용하고 있는 셈이다.

 

▲ 북부 토라자(Toraja Utara)의 중심지에 새겨진 기독교의 상징인 십자가다. 교회가 있고 교회 신자라고 하는 사람들이 가장 많지만, 다수의 주민들은 전통적 종교와 그 가치관을 중심으로 생활한다. 토라자 지역의 기독교는 네덜란드 식민지배자들이 해변의 이슬람교를 믿는 부기스 등의 종족들과 ‘분리 후 통치(Divide and Conquer)’를 하기 위한 수단의 하나로 식립했다.  © 이창현


다음 회에는 수마트라(Sumatra)의 크린치(Kerinci) 커피를 소개하려고 한다. 수마트라는 인도네시아서 2번째로 큰 섬이다. 그 섬에서 가장 높은 산의 하나이자 천연 원시림에 현재도 자연 상태의 호랑이가 살고 있어 가끔 호환을 당한 뉴스가 나오기도 한다. 일찍이 유럽 수출용 차(tea)밭으로 개발되었었다. (계속)

 

이창현

언론학박사, 한국경제문화연구원 글로벌 비즈니스위원장

인도네시아에서 4년간 주재원으로 근무하면서 인도네시아 농어촌 마을의 산업화를 위한 일촌일품(一村一品) 사업을 지원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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