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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인 칼럼] 앙팡 테리블(Enfant terrible)

이세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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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행착오(試行錯誤)’라는말이 있다.

 

원래는 심리학이나 동물학에서 쓰인 용어였지만 이것이 인간들의 행동 방향을 결정하는 하나의 요인으로 작용하고부터 이 시행착오라는 말은 우리와 친숙하게 되었다.

 

사람은 어쩌면 다른 동물과 마찬가지로 이 시행착오에 의해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다만 짐승과 다른 점이라면 부끄러운 기억력을 가지고 두 번 다시 같은 과오를 저지르지 않으려고 노력한다는 점일 것이다.

 

특히 어린 연령기에는 참으로 많은 시행착오를 저지르곤 한다. 아니, 오히려 시행착오를 당한다는 표현이 옳을지도 모른다. 시행착오를 일으킨 후에는 상처도 큰 것이지만 그것에서 비롯된 후유증은 더 오래가고 또한 심각한 법이다.

 

그러나 점차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이 시행착오의 빈도(頻度)는 적어지는데 그것은 그만큼 경험에 의해 인생살이를 터득했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래서 공자가 나이 40부터는 세상일에 미혹되지 않았다 하여 ‘불혹지년(不惑之年)’이란 말을 했다.

 

아무튼 돌이킬 수 없는 시행착오는 되도록 겪지 않을 일이다. 또한 일의 조짐을 보아 미연에 그런 일의 씨앗을 없애거나 방지하는 것도 효과적인 일일 것이다.

 

요즘 북한의 최고 지도자인 30대의 ‘김정은‘이나, 최근 국내 여, 야 정당의 핵심 인물로 선출되었던 ’이‘모, ’박‘모 씨를 비롯한 2, 30대의 나이 어린 정치인들을 보면서 《앙팡 테리블》이라는 프랑스 작가 ’쟝 콕토(Jean Cocteau)‘의 소설이 생각났다.

 

 

이 앙팡 테리블이란 말은 전후(戰後) 현대사회 속에 살아가는 순수와 동심을 잃어버린, 소위 ’무서운 아이들‘이라는 말로 고정되기까지 한 용어이다. 

 

’무서운 아이들’―

 

이 말은 예전처럼 가난하고 살기 힘들었던 시절에는 찾아볼 수 없던 말이었다.

 

요즘처럼 삶이 넉넉하고, 영양상태도 좋으며, 집안의 배경도 괜찮은 도시 가정에서 성장하는 아이들의 절제되지 않은 생각과 행동들이 이들을 무서운 아이들로 변모시키고 있다.

 

어른들을 두려워하지 않고, 기성의 질서나 윤리마저도 파괴하는, 그리하여 덜 여물고 유치하기조차 한 그네들의 생각을 기성 가치에 대신하게 하는 온갖 노력들이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날이 갈수록 이런 무서운 아이들은 늘어 갈지도 모른다.

 

언젠가 영화관 앞을 지나가면서 본 영화 간판에는 그런 무서운 아이들이 온갖 소란을 피우는 것을 무슨 영웅인 양 묘사해 놓아 이를 보는 사람들을 망연자실, 개탄에 빠지게 했다.

 

이렇듯 아이들이 당돌하고 무서워지는 것은 다름 아닌 어른들의 책임이며 나아가 사회의 교육환경에 대한 무관심이 원인일 것이다.

 

도시에는 마천루가 솟고, 권력자의 비리가 만연(漫然)하며, 화장이 요란한 여인들의 웃음이 휘날리지만 그런 도시 속에서 어린 마음들이 병들어 가고 있지나 않은지 어른들은 자각해야 한다.

 

언젠가는 그 무서운 아이들이 자신들의 시행착오에 의해서 더 큰 모멸과 불행한 일을 당할지 모를 일이기 때문이다. 생각하면 끔찍한 일이다.

 

문득 ‘죠르쥬 비제(George Bizet)’의 오케스트라를 위한 작은 모음곡 《어린이 놀이(Jeux d’enfants) Op.22》가 떠올라 잠시 소개하고자 한다

 

이 곡은 《카르멘》이라는 오페라로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프랑스의 낭만주의 작곡가 비제의 작품이다.

 

이 ’어린이 놀이 Op.22‘는 원래는 2대의 피아노를 위한 12곡의 모음곡이었는데 그중 5곡을 간추려 관현악곡으로 편곡해 놓았다.

 

첫째곡은 ’행진곡(March)’으로 표제는 '트럼펫과 북'인데 마치 군대 행진곡풍의 곡이다.

 

둘째곡은 '자장가(Berceuse)‘로, 표제는 '인형'으로 아이들이 인형을 잠재우는 모습을 묘사해 놓은 매우 귀여운 곡이다.

 

셋째곡은 '즉흥곡(Impromptu)’인데, 표제는 '팽이(The Top)‘로 팽이가 빨리 도는 모습이 연상된다.

 

넷째곡은 '2중주'(Duo)로, 표제는 '작은 남편과 아내'로 되어있는데 옛날 어린 시절에 흉내 내었던 엄마, 아빠 놀이의 모습이 떠오른다.

 

다섯째곡은 '갤럽(Galop)’인데, 표제는 '무도회'(The Ball)로 경쾌한 무곡(舞曲)이다.

 

 

죠르쥬 비제 《어린이 놀이 Op.22》/ 지휘, 아드리안 볼트(Adrian Boult) / 연주,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

 

어린 시절의 '놀이'란 대단히 유익한 일이다. 그것이 '소꼽놀이'라도 좋고 '모래판 놀이'라도 좋다. 이는 아이들의 직업이 '노는 일'이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노는 일'을 통해 세상을 배운다.

 

소꼽놀이를 통해 부부(夫婦)가 무엇인지, 가정이 무엇인지, 국가가 무엇인지를 배운다.

 

또한 어느 교육자는 "아이들에게 있어서 진짜 교육은 모래판 놀이에서 이루어진다"라고 했다.

 

그곳에서 욕심껏 모래를 한 웅큼 쥐었더니 모두 손가락 사이로 술술 빠져나가는 것을 경험한다. 그때 아이들은 "아! 움켜쥔다고 다 내 것 되는 것이 아니구나."하며 거기서 '철학'을 배우게 된다.

 

또한 높게 쌓아 놓은 모래성을 힘센 아이가 와서 행패를 부리며 무너뜨려도 힘이 약해 대항하지 못한 채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지만 그냥 참는다. 그때 이 아이는 '인내'를 배우게 된다.

 

그리고 집에 돌아오면 모래 장난을 했다고 혼날까 봐 모래판에 가지 않았다고 어머니께 거짓말을 한다. 하지만 앉자마자 옷에서 모래가 떨어진다. 그래서 거짓말했다고 꾸중을 듣는다. 그때 이 아이는 거짓말은 좋지 않은 것이라는 '도덕적 교훈'을 얻게 된다.

 

이렇게 놀아야 할 아이들이 요즘 너무 바쁘다.

 

어머니의 극성에 의해 영어학원으로, 과외공부로, 피아노학원, 웅변학원, 속셈학원 등으로 기계처럼 바쁘게 움직이며 머리만 키운다. 그러다 보니 정작 배워야 할 것을 배우지 못하고, 세상 돌아가는 것조차 깨우치지 못한 채, 나밖에 모르는 극단의 이기주의자가 된다. 그래서 늘 시행착오를 일으킨다. 

 

이런 아이들이 바로 '무서운 아이들'이다.

 

특히 지도자는 '지식'이나 '재주'나 '학벌'이나 '배경'에 의해 세워지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세월을 배우고 경륜을 터득해야 한다

 

2, 30대의 어린이들이 고도의 술수와 풍부한 경험을 필요로 하는 정치판에 쉽게 얼굴을 내미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시행착오를 부르는 성급한 모습이 아닐까 한다.

 

더욱이 당장 눈앞의 필요를 위해 이를 부추기고 끌어들이는 어른들의 무책임한 모습은 무엇보다 가장 심각한 문제로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나이에 맞게 소꼽놀이 하듯이 동심으로 돌아가 세월을 배우고 경륜을 터득하면서 최소 불혹의 나이가 지난 후 공익을 위해 세상에 나서는 것이 시행착오를 줄이는 일이라 생각되는데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신지 묻고싶다.

 

강인

예술평론가, 사단법인 카프코리아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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