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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인 칼럼] 합하세

이세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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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 용어 중에 '관음(觀音)'이라는 말이 있다. 관음은 관세음(觀世音)의 준말이다. 문자적으로 풀이하면 '소리(音)를 본다'라는 뜻이고 그 소리는 세음(世音), 즉 세상에서 울려 나오는 중생의 소리를 뜻한다. 즉 부처님의 대자대비하심이 소중한 중생의 소리를 귀로 듣는 것도 부족하여 눈으로 보기까지 지극정성을 기울인다는 말이다. 

 

관음과 비슷한 의미의 표현이 하나 더 있다. 바로 '문향(聞香)'이다. 문향이란 '향기를 듣는다'라는 뜻이다. 귀로 듣는 향기란 한겨울에 꽃피우는 매화(梅花)의 암향(暗香)을 말한다. 날 듯 말 듯, 있는 듯 없는 듯한 매화향. 그래서 그 향은 코로 맡는 것으로는 부족하여 귀까지 동원하여 들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는 소리는 귀로 듣는 것이지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니고, 향기는 코로 맡는 것이지 귀로 듣는 것이 아니라는 지시적 의미를 넘어, 비록 추상적이지만 깊이 음미할수록 동양적 서정의 극치라 여겨지는 매우 아름다운 표현이다. 

 

며칠 전 춘천에서는 ‘다온여성합창단’의 창단연주회가 열렸다.

 

▲ 춘천 다온여성합창단의 연주 모습

 

이 연주회에 앞서 필자는 지난 5월의 어느 날, 이영진 지휘자로부터 ‘다온여성합창단’ 소개와 함께 아래와 같은 내용의 글을 받은 적이 있다.

 

“제가 작년부터 지휘를 맡아온 합창단입니다. 단원은 현재 26명이고 평균연령이 64세의 노령(老齡)이지만 오는 10월 창단연주회를 앞두고 열심히 연습하고 있습니다. 더욱 다듬고 연마하여 더 좋은 소리를 들려드리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이 글을 보는 순간 문득 신약성경 중에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요1:46)”라는 구절이 떠올랐다. 이는 아무리 “더욱 다듬고 연마하여.....” 창단연주회를 마련한들 평균 64세의 할머니들로 구성된 춘천의 아마추어 합창단에게서 무슨 훌륭한 연주를 기대할 수 있겠느냐?“라는 선입견 때문이다. 

 

그러나 막상 연주회에 참석함으로 인하여 그 선입견은 일시에 사라져버렸다. 필자에 눈에 보이는 ‘다온’의 무대는 아름다운 꽃밭이었다. 이 꽃들의 음악적 수준은 매우 고상했고, 노래하는 초로(初老)의 여인들에게서 풍기는 향기가 매화의 암향처럼 그윽했기 때문이다. 필자는 두 시간 가까이 관음과 문향의 정성으로 이 아름다운 천상의 음악 소리와 그윽한 향기에 탐닉하였다.

 

합창단의 수준은 지휘자의 능력에 의해 좌우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기에 다온여성합창단이 이영진 선생 같은 실력과 열심을 겸비한 지휘자를 모신 것은 행운이 아닐 수 없다. 그는 과거 국립합창단이 주관하는 전국 합창대회의 심사위원으로 위촉되는 등 서울에서도 활동할 기회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고향인 춘천에서의 활동을 고집하는 애향 음악가이다. 앞으로 이영진 지휘자가 이끄는 다온여성합창단을 통해, 춘천이 말뿐이 아닌 실제적 문화예술의 고장으로 거듭나기를 희망한다. 그러기 위해서 이영진 선생 같은 일꾼이 이 고장에서 더욱 요긴하게 쓰임 받기를 바란다.

 

한편, 이 연주회를 통해 또 다른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었던 것은 역시 지휘자의 노련한 진행이었다. 마지막 스테이지 직전 무대에 오른 지휘자는 ”이제 마지막으로 두 곡을 남겨두고 있습니다. 혹시 여러분이 원하신다면 비장의 무기로 준비한 앙코르곡도 기대하실 수 있습니다“라는 유머러스한 멘트에 이어 실제로 손 율동을 곁들여 부른 춘천의 노래 ‘소양강 처녀’는 무대에서 노래하는 평균 60대 중반의 할머니들을 ‘18세 딸기 같은’ 소녀로 돌려놓았고, 이 모습에 공감하는 1천여 명에 가까운 관객은 박자에 맞춰 손뼉치며 함께 노래하는 모습을 통해 모두 하나가 됨을 실감할 수 있었다. 

 

더욱이 연주회가 끝났음에도 공연장을 떠나지 못하고 로비에서 삼삼오오 모여 만면에 웃음을 띠고 희희낙락하는 관객의 모습을 바라보니 과거 ”모든 공연의 성공 여부는 객석을 떠나는 관객의 얼굴 표정으로 결정된다“라고 한 어느 음악평론가의 말이 생각났다.

 

사람이 짐승과 다른 것이 무었인가? 그것은 ‘웃을 줄 아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오늘 공연은 대성공이 틀림없다. 요즘같이 사람을 찾기 힘든 세상에 합창을 통해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기 때문이다.

 

▲ 연주가 끝난 후 공연장을 떠나지 못하는 관객의 모습


앞서 필자는 이 글의 제목을 ‘합하세’라 하였다. 이는 언젠가 우연히 본 한 인터넷 카페의 이름인 ‘합창으로 하나 되는 세상’의 줄임말이다. 이 이름이 필자의 머릿속에 남아 있다가 오늘 다온여성합창단의 창단연주회 후기를 쓰려는 순간 불현듯 떠오른 것은 이 합창단을 통해 춘천이 하나 되고, 나아가 대한민국이 하나 되는 세상을 기대하는 마음 때문일 것이다.

 

‘하나가 된다는 것’은 한자로 ‘합(合)’이라 한다. 이 말의 사전적 의미는 ‘여럿이 모여 하나가 되다’, ‘만나다’, ‘틀리거나 어긋남이 없다’이다.

 

아마도 우리 국민 중에 ‘하나 됨’을 바라지 않는 이는 없을 것이다.

 

대표적인 예로 ‘남북통일’이다. 오죽하면 남녀노소가 “우리의 소원은 통일, 꿈에도 소원은 통일·····”이라는 국민가요를 70년이 넘게 불러왔겠는가? 그것도 주로 합창으로....., 이는 가사의 내용대로 통일은 “이 겨레, 이 나라 살리는 근력”임을 절절히 공감했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현 정부의 정책 이슈(Issue)는 ‘국민통합’일 것이다. 정권이 바뀐 후 가장 먼저 정한 대통령 직속의 기구가 ‘국민통합위원회’일 정도이다. 즉 새 정부의 가장 원하는 것이 국민의 하나 됨인 것이다. 이는 통합이란 하나가 되는 것이고, 국민의 통합은 국력의 원천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통일이든 통합이든 근본적으로 인간이 하나 되는 방법 자체도 모르는 문외한들이 모여 형식적 거대 담론으로 일관하고 있는 안타까운 실정이다.

 

정치권의 모습은 더욱 가관이다. 음악에는 합창이나 합주가 존재하지만, 정치에는 합이라는 것을 찾아보기 어렵다.

 

바로 춘천 다온여성합창단의 합창을 통해 그 자리에 모인 국민이 웃는 얼굴로 하나 되는 그 시각, 정치권에서 발표한 구호는 “협치는 없다”였다. 

 

‘협(協)’ 없이 어찌 ‘합(合)’을 이룰 수 있겠는가?

 

정치권이 하나 될 수 없다면 결국 국민 스스로 하나가 되어야 한다. 국민 모두가 함께 노래하며 하나 됨을 이루어가야 할 것이다.

  

이 합창단의 명칭인 ‘다온’은 ‘다 온다’라는 뜻이라 한다.

 

바라기는 가장 연약한 여성이요, 노인으로 구성된 다온여성합창단이 해를 거듭할수록 합창을 사랑하는 노래의 동지들이 ‘다 와서’ 춘천을 ‘합창으로 하나 되는 세상’으로 가꾸어나가기를 기대한다.

 

비록 춘천이 나사렛(Nazareth)과 같은 변방이지만 합창을 통해 대한민국 국민통합의 역할을 앞서 감당하는 선한 존재가 되어주길 바란다. 

 

일찍이 악성(樂聖) 베토벤이, 자신이 작곡한 합창교향곡(Symphony No.9) 악보 중간에 친히 육필로 써놓은 “Seid umschlungen, Millionen(백만인이여, 서로 포옹하라)”라는 글도 온 인류가 ‘합창으로 하나 되는 세상’을 바라는 간절한 표현이라 여겨진다.

 

하나 되는 것이 사랑이다.

하나 되는 것이 평화요, 행복이요, 천국이다.

이렇듯 하나 되는 귀한 일들을 합창으로 이루어가는 춘천의 다온여성합창단 여러분은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위대한 분들이라 확신한다.

 

강인 

예술평론가, 사단법인 카프코리아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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