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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인 칼럼] 따로국밥의 나라

이세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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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1년여 전 배상환 시인의 ‘따로국밥도 끝에는 말아서 먹는다’라는 음악시집(音樂詩集)이 출간되어 세간에 화제가 된 적이 있다.

 

배상환은 시인이면서 작곡가, 합창지휘자, 음악평론가로 활동해온 음악가이기도 하다.

 

2007년 도미하여 현재에 이르기까지 라스베이거스(Las Vegas)에 20여 년간 거주하며 네바다(Nevada)주 법인인 ‘서울문화원’을 설립, 지역 한국 교민들을 대상으로 다양한 문화 활동을 펼쳐온 한인사회의 실질적 리더(Leader)이다.

 

특히 1988년에 시집 ‘학교는 오늘도 안녕하다’로 문단에 데뷔, 그동안 5권의 시집 출간에 이어 최근 음악을 소재로 한 여섯 번째 시집을 내놓았다. 이 시집은 모두 46편의 시를 모아서 엮은 우리나라 최초의 음악시집이다.

 

“시란, 쓰지 않으면 죽을 것 같아서 쓴 글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죽을 것 같은 감정이 아름다움, 행복, 불행, 고독, 절망, 그리움, 외로움 등 어떤 것이든 간에 그것을 밖으로 표현하지 않으면 죽을 것 같기에, 그래서 살기 위해 쓴 것이 시라고 생각합니다.”

 

이 시집 ‘자서(自序)’ 첫머리에 기록한 시에 대한 저자의 견해이다.

 

원래 시(詩)는 ‘말씀 언(言)’변에 ‘절 사(寺)’자 즉, ‘절에서 수행자들이 엄숙하게 주고받는 말’이라는 뜻인 걸 보면 배상환 시인의 시에 대한 견해가 ‘엄숙함’과 그 결은 다를지라도, ‘순수성’의 측면에서 볼 때 전혀 생소하지만은 않은 것 같다.

 

그런데 요즘 일부 사이비 시인들로 인하여 시를 쓰는 이유의 세속화된 경향이 배 시인의 순수성과는 큰 거리감을 느끼게 한다.

 

즉 “시란 쓰지 않으면 죽을 것 같아서” 까지는 배상환 시인의 순수성이나 사이비 시인들의 세속화된 경향은 같은데 그 “죽을 것 같은 감정”에 대한 피차의 개념이 다르다는 것이다.

 

배 시인의 “죽을 것 같아서.....”는 아름다움, 행복, 불행, 고독, 절망, 그리움, 외로움 등을 밖으로 표현하지 못할 때 느끼는 순수한 예술적 감정이라면, 사이비 시인들이 느끼는 “죽을 것 같아서.....”는 대중의 인기나 이에 따른 재물을 얻지 못함에서 오는 세속적 욕망의 감정이라는 것이다.

 

유감스러운 점은 이러한 면이 시인에게만 국한되는 이야기가 아니라 예술계 전반에 만연해있다는 것이다.

 

이렇듯 “시란 쓰지 않으면 죽을 것 같은 감정”의 서로 다른 두 가지 현상은 바로 ‘메시지(Message)’의 유무이다. 

 

‘메시지’라는 단어의 사전적 의미는 ‘문예 작품이 담고 있는 교훈이나 의도’라고 풀이하고 있다.

 

즉, 예술적 감정을 표현하는 순수시에는 반드시 메시지가 수반된다. 그러나 대중의 인기나, 먹고살기 위해 쓰는 잡(雜)글에는 메시지가 존재하지 않는다. 그 대신 궤변이나 말장난 또는 미사여구로 포장한 의미 없는 말의 성찬만이 존재할 뿐이다. 

 

필자는 시를 쓸 줄은 모르지만, 시를 사랑하는 독자로서 이런 잡글을 읽을 때마다 한심하다 못해 비감을 느끼기까지 한다. 

 

필자가 배상환 시인의 시를 좋아하는 이유는 그 속에 메시지가 있기 때문이다. 그의 시는 우리 모두의 삶 속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평범한 이야기지만 그 속에 풍자와 야유와 냉소가 있고 준엄한 질책과 교훈이, 쉽고 친근한 형태로 축약되어있다.

 

▲ 배상환 시인의 음악시집 표지

 

‘따로국밥도 끝에는 말아서 먹는다’라는 시집에 실린 46편의 시도 저마다 재미있으면서도 촌철살인의 강력한 메시지를 담고 있어 단순히 읽고 지나갈 수 없도록 깊은 생각에 붙잡히는 글들이다.

 

‘따로국밥도 끝에는 말아서 먹는다’

 

“....<전략>

연주장 밖에는 / 남과 북 따로 따로 / 여당 야당 따로 따로 / 낙동강 따로 영산강 따로 / 연주장 안에는 / 국악 양악 따로 따로 / 연주자 평론가 따로 따로 / 순수음악 따로 대중음악 따로

 

전경 따로 대학생 따로 / 국립 따로 민간 따로 / 마누라 따로 세컨드 따로 / 레슨비 따로 뇌물 따로 / 말 따로 행동 따로 / 방귀 뀐 놈 따로 똥 싸는 놈 따로 / 따로 따로 따로 따로 / 그저 그저 따로 따로 / 따따로따따로따따로따따로 / 따다다다다다다다로로로로 / 따로국밥도 끝에는 말아서 먹는다

<후략>.....”

 

지금 대한민국은 ‘따로국밥의 나라’다.

 

배상환 시인께 용서를 구하며 시에 몇 줄 첨언하고자 한다.

 

“정부 따로 국민 따로 / 여당 따로 야당 따로 / 보수 따로 진보 따로 / 영남 따로 호남 따로 / 남한 따로 북한 따로 / 젊은이 따로 노인 따로 / 여성 따로 남성 따로 / 윤씨 따로 문씨 따로 / 따로 따로 따로 따로 / 그저 그저 따로 따로 / 따따로따따로따따로따따로 / 따다다다다다다로로로로 / 따로 따로 나눠 봐도 끝에는 한 민족이다” 

 

그것이 한 핏줄의 특성이다.

 

누구의 발상인지는 모르겠으나 현재 정부에서는 ‘국민통합’을 국정의 모토(Motto)로 삼고 이를 도모하는 듯하다. 

 

‘통합’이란 통일, 즉 하나가 되는 것이다, 사전적 의미로도 “둘 이상의 조직이나 기구 따위를 하나로 합침”이라 풀이하고 있다.

 

그런데 피차 이념을 달리하는 여야 정치집단이나, 각자 생각하는 바와 원하는 바가 다른 존재들의 집합체인 국민의 정신적 통합이 과연 가능하겠는가? 

 

예컨대 ’국‘에 ’밥‘을 만다는 것은 국과 밥이 섞여 함께할 뿐, 하나가 된다는 의미는 아니다. 그러나 섞여 함께함으로 먹는 사람의 미각을 더해준다. 

 

또한 합창도 노래하는 자들이 모여 협력하므로 아름다운 조화(Ensemble)를 이루는 것이지 결코 통합의 의미는 아닌 것이다.

 

한가지 더하여, 여야가 위민(爲民)의 목적 아래 동지가 된다는 것도 정치인으로서의 협력일 뿐 통합의 의미일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국민통합이란 어쩌면 끝내 이룰 수 없는 희망 사항이 아닐까 한다. 

 

더욱이 모범을 보여야 할 정치권의 집단이기주의에 매몰된 구역질 나는 싸움판을 바라보는 국민이 어찌 통합을 이룰 수 있겠는가?

 

그러나 비록 하나가 될 수는 없어도 이해와 용서와 협력 속에 함께 노래함으로 화합은 이룰 수 있지 않겠는가?

 

정부의 섣부른 국민통합을 위한 도모(圖謀)가 도모(叨冒)로 인해 한낱 정치적 술수로 패도(霸道)에 이르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배상환 시인은 ‘따로국밥도 끝에는 말아서 먹는다’라는 시를 통해 ‘따로국밥의 나라’ 같은 대한민국도 이제는 국민화합을 이루어야 한다는 간절한 메시지를 외치고 있는 것이다.

 

강인

예술평론가, 사단법인 카프코리아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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