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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랜드 박사의 맛 이야기] – 커피 편(3) 발리 낀따마니

이세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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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리(Bali)는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관광지로서 비교적 잘 알려져 있다. 특히 신혼여행지 혹은 휴양지로 잘 알려져 있어서 여행 후의 기억 또한 좋은 편이다. 그 결과 재방문 의사도 높고, 발리와 연관된 기억(Related Memory) 또한 좋은 편이라 브랜드나 마케팅적으로 확장 가능성이 높다.

 

‘발리’라는 단어를 생각하면 해변, 힌두교, 휴양, 서핑, 풀빌라 등의 연관 단어가 주로 떠 오르는데, 최근에는 커피도 한 몫을 한다. 맛이 좋았다는 것이다. 현지에서 생산된 갓 수확한 신선한 원두로, 현지에서 전문가들이 내리는 커피 맛이 일품이었다는 것이다. 편안하고 좋은 기분으로 마시니 더 느낌을 주지 않았나 생각해 본다.

 

오늘날 발리의 커피는 자연환경과 문화가 키운 것이다. 많은 관광객들이 아름다운 자연환경과 독특한 힌두교를 중심으로한 화려한 문화를 찾아 방문한다. 발리의 북쪽은 태평양이고, 남쪽은 인도양이다. 인도양과 태평양을 구분하는 열도의 가운데 있다. 아시아 대륙판과 오세아니아 대륙판 등 여러 대륙판이 만나는 불의 고리 한가운데 있어 자연환경이 독특하다. 인도, 특히 남부 인도의 강한 영향을 받은 힌두교와 결합한 화려한 문화가 특색이다. 이런 2가지 특징으로 인해 전세계에서 많은 관광객이 찾는다.

 

▲ 발리 우붓(Ubud) 인근 낀따마니(Kintamani) 지역에서 제사가 있는 날 거리 풍경. 여인들은 전통 예복을 차려입고 신에게 바칠 제물을 머리에 이고 사원으로 들어가며, 남자들 역시 예복을 입고 대기하고 있다.  © 이창현

 

많은 관광객을 대상으로 하는 여러 가지 상품이 개발되었고, 또 개발되고 있는데, 그중의 하나가 커피이다. 전세계에서 오는 입맛이 까다로운 부자 손님들도 많다 보니 품질이나 서비스가 더욱 더 고급화되었는데,  커피 관련 품질이나 기술이 발전한 이유의 하나이기도 하다. 

 

그런데 발리가 독립 국가인지, 아니면 특정 국가에 속한 섬인지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혹은 특정 국가에 속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면서도 그 국가의 이름을 모르는 경우도 많다. 아마도 관심이 적어서 일 것이다. 

 

‘발리보다 인도네시아’라는 책과, ‘발리 옆 나라 인도네시아’라는 신문 기사 제목이 이를 대변해 준다. 다들 발리를 들어는 봤지만 부분적으로만 알고 있다는 말이다. 제주도를 잘 안다는 외국인이 한국의 수도가 어딘지 모르는 상황과 유사하다고 볼 수도 있다.

 

여기서 잠깐 발리를 좀 자세히 소개하고자 한다. 알고나면 더 많이 즐길 수 있고 또 모방을 통한 창조로 이어질 수도 있으니 말이다. 발리의 아름다운 자연과 문화의 이면에는 슬픈 역사가 있다.

 

발리는 세계에서 4번째로 인구가 많은 인도네시아라는 국가에 속해 있는 18,000여 개의 섬 중 하나로, 제주도 면적보다 3배쯤 더 크고, 인구는 6배쯤 많다. 그리고 전체 인구의 92%라는 절대다수의 힌두교도들은 산과 언덕, 해안 등에서 살고 있고, 5~6%의 적은 수의 이슬람교도들은 상대적으로 풍요로운 해안 지역이나 상업지역에 상업이나 관광업에 종사하면서 살고 있다.

 

발리인들은 인종적으로 볼 때 인도네시아 최대의 종족인 자바인과 거의 유사하다고 한다. 그들은 한 때 인도네시아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섬이자 오늘날 수도 자카르타가 있는 자바섬에서 살았다고 전해진다. 힌두교를 믿던 그들은 이슬람교도들을 피해 벼농사가 잘 되던 자신들이 살던 풍요로운 자바섬을 떠나 높은 산과 해안에 절벽이라는 천연 보호막이 있는 발리섬으로 이주해서 자신들의 종교를 지키며 살아왔다. 

 

높은 산과 해안은 침입하는 적들을 방어하기에 좋은 곳이다. 비록 모래 해안이라 하더라도 조금만 섬 안쪽으로 들어가면 산의 계곡과 언덕들로 둘러싸여 있다. 그 언덕에서 쌀을 비롯한 커피, 카카오 등 다양한 작물을 재배하며 살았다. 요즘은 관광객에게 판매하기 위한 채소류나 와인을 만들기 위한 포도, 오렌지나 귤 등도 재배하고 있다.

 

열대 고원지대는 인간이 생활하기에 아주 좋은 환경이다. 왜 인간이 열대 고원지대를 좋아하는지에 대한 물음에 인류학자들은 '최초의 인간이 탄생한 곳이 바로 열대의 고원지대(혹자는 에티오피아의 고원지대라고 구체적으로 언급하기도 한다)'라는 말로 설명하기도 하지만, 살아보면 열대 고원 기후가 인간이 활동하기에 아주 좋다는 것을 알게 된다.

 

다만 문제는 식량인데, 열대 고원 산악지대에서 쌀농사는 쉽지 않다. 그래서 평야가 적은 우리나라 남해의 다랑논처럼 발리에도 다랑논이 많다. 논농사도 풍요롭지 않고 다른 환금작물도 많지 않으며, 2차 산업도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아름다운 자연과 다채로운 힌두 문명을 가진 이 섬에서 관광업이 활성화 한 것은 당연한 결과일 것이다. 

 

인도네시아의 수도 자카르타를 방문한 사람들이 흔히들 ‘왜 이런 큰 대도시에 이름난 관광지가 없는지’ 궁금해하고, 뭔가 심심하고 단조롭다고 느낀다. 반면 발리를 방문한 사람들이면 다양하고 다채로우며 화려하다고 느낀다. 그 이유는 바로 종교 때문이다. 이슬람교도는 인간의 모습을 띤 장식이나 겉으로 드러나는 화려한 치장 등을 거의 하지 않는다. 하지만 힌두교의 치장은 매우 화려하고 다양하다.

 

세계에서 가장 많은 수의 이슬람교도가 사는 인도네시아에서 섬 하나를 거의 온전히 힌두교 중심의 자치지역으로 유지하고 있는 것이 참 특이하다. 다양성과 포용력을 존중하는 대국 인도네시아의 건국 이념에 따라 적어도 겉으로는 평화롭게 공존하고 있는 듯 보인다.

 

발리에는 해발 3,142m의 높은 활화산이 있는데, 우리나라 제주도 한라산 정상이 해발 2,000m도 되지 않는다는 것을 생각하면 얼마나 많은 언덕과 가파픈 계곡이 있을지 짐작이 간다. 

 

발리의 농어촌을 활성화하기 위한 내 업무의 하나로 발리 커피 농장으로 출장을 가게 되었다. 이 말을 들은 인도네시아 화교인 지인이 자신도 최근에 발리에 다녀왔다면서 '당신은 등산을 좋아한다니 꼭 가보라'라고 했다. 사진도 보여줬다. 나도 모르게 탄성이 나왔다. 하지만 바쁜 출장 일정이라 그것까지 생각할 여력은 없었다.

 

발리는 도로망이나 대중교통이 발달하지 않아 운전기사가 딸린 차를 빌려 몇 시간씩 이동하면서 일을 봐야 한다. 교통 체증도 심하다. 길이 막혀 무료할 때면 운전사나 같이 출장을 간 직원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한창 길이 막힐 때 였다. 함께 출장 간 직원 옥타(Okta) 씨에게 지인이 보내준 등산 사진을 보여줬다. 인터넷을 찾더니 우리가 방문할 낀따마니(Kintamani) 지역에 있는 커피 농장에서 멀지 않은 곳이라고 말한다. 산 정상으로 올라가는데 2~3시간 걸린다고 덧붙였다. 그리고 자신도 처음 알았다고 말하면서 꽤 유명한 관광지라고 했다. 본인도 발리에 몇 번 왔지만, 가족들과 해변에서만 시간을 보냈었다고 말했다.

 

출장 목적지인 낀따마니 지역 인근 커피 농장은 발리 우붓(Ubud) 지역에서 차로 1시간 30분 정도 떨어진 곳이며, 발리 공항에서 2시간 30분~3시간 30분 정도 걸린다. 길이 좁아 교통 체증이 일어나면 2배 이상 더 많은 시간이 소요될 수도 있다. 낀따마니라는 이름은 자카르타에 고급 아파트 단지 이름으로 더 잘 알려져 있는데, 거주민의 80% 이상이 한국인이라고 한다. 

 

▲ 발리 우붓(Ubud) 인근 낀따마니(Kintamani) 지역의 바뚜르(Gn. Batur)산 일출. 아침 해가 떠오를 때면 역광을 받은 삼각형 모양의 두 개 산이 겹쳐 보여 독특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뒤에 옅은 색으로 보이는 산은 발리에서 가장 높은 산인 아궁(Agung, 3.142m)산이며, 꼭대기에 구름처럼 보이는 것이 활화산 정상에서 뿜어져 나오는 수증기다. 산 아래 호수 위로는 운해가 펼쳐져 있다. 이 운해는 아침에 자주 일어나는 장관이다. Yessie 씨로부터 기증받아 활용한다.   © 이창현

 

발리에서 몇몇 유명한 해안을 제외하고는 우붓(Ubud) 지역이 가장 유명한데, 해발 200m 정도로 상대적으로 시원하며, 힌두교가 매우 활발하게 꽃피우고 있어 관광할 것이 많다. 우붓 배후에 있는 낀따마니 지역은 해발 1,000m가 넘어 아라비카를 품종의 커피도 재배할 수 있다. 

 

낀따마니 지역에서는 전회에서 언급했던 싱글오리진(Single Origin)의 스페셜티커피 (Specilty Coffee)를 비롯한 다양한 커피를 생산한다. 해외 전문가들은 인도네시아 커피 중에서 아체 지역의 가요(Aceh Gayo) 커피를 가장 많이 떠 올린다. 가요 지역의 커피나무가 인근 만델링 지역으로 번진 것이 만델링 커피인데 아쉽게도 코로나 사태의 여파로 아체 지역은 필자가 방문할 기회가 없었다.

 

한국에서도 등산하면서 석양을 즐겨보곤 해서, 일정이 끝난 저녁 야간 산행이라도 할까 하고 물었더니, 발리는 오후에 구름이 껴서 오후에 등산하면 아무것도 볼 수가 없다고 한다. 새벽에 가야 한다고 했다. 뒷날 알고 보니 이곳 열대 지역에 있는 대부분의 섬 지역에 공통된 특성의 하나였다.

 

바뚜르(Gn. Batur)산의 일출 절경은 정말 대단했다. 지리적 특성인데, 1년 365일 중 360일 이상은 떠 오르는 아침 햇살을 볼 수 있으며, 360일까지는 아니지만 그래도 아주 많은 날을 운해도 같이 볼 수 있다고 한다. 

 

이르면 새벽 3시 30분부터 등산을 시작하는데, 베이스 캠프는 간단한 아침식사와 커피를 제공한다. 그리고 그 베이스 캠프 주위는 3~4미터 높이의 커피 나무와 카카오 나무 등을 많이 심어놓아 독특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고원지대라 새벽 날씨는 차다. 새벽 기온은 14°C~17°C 정도 되는데, 이때 아침 식사 후에 마시는 따뜻한 커피는 잠을 깨우고 몸도 따뜻하게 한다. 그리고 군데 군데 낀따미니 지역의 커피 농장 사진이나 다른 관광 상품 사진을 전시해 놨다. 

 

정상까지 2시간 정도 소요되며, 6시 쯤에 떠오르는 일출과 운해를 감상하고 하산하면 8시 정도 되며, 씻고 9시부터 시작되는 일정을 소화하기에 무리가 없었지만 아쉬움은 있었다. 관광객이라면 좀 더 느긋하게 용암 온천도 즐길수도 있고, 커피 농장 투어나 다른 많은 매력적인 프로그램을 찾았을 것이다. 등하산시에 만난 외국인들은 한결같이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장면의 하나를 보았다고 하면서 그 매력에 푹 빠져 있었다.   

 

▲ 바뚜르(Gn. Batur)산 일출을 즐기는 수많은 사람. 능선 위에 아주 작은 점들이 다 사림이다. 젊은 서양인들이 많다. © 이창현

 

낀따마니를 비롯한 대부분의 발리 지역은 토질이나, 비가 많이 오는 열대 기후, 경사가 심한 비탈 지형의 특성상 기계를 이용한 대량 생산이 어렵다. 중남미의 커피에 비해 생산원가가 비쌀 수밖에 없다. 경사가 심한 비탈이라 비료를 주더라도 쉽게 비에 씻겨 내려가고, 마치 가파른 산을 오르는 것 같이 기울기가 심해 걸어다니기에도 불편하여 커피나무 관리나 수확이 쉽지 않다.

 

그래서 낀따마니 지역 커피 생산 농가에서는 다양한 방법으로 커피 생두의 맛을 좋게 하는 방법을 시도하고 있다. 즉 커피 열매의 껍질을 어떻게 벗기느냐에 따라 맛이 달라지는데, 용어나 방법이 복잡해서 이 칼럼에서 소개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다만 아래의 사진으로 매우 다양한 방법으로 커피 생두를 만든다는 것만 소개하고 싶다.

 

▲ 검붉게 잘 익은 커피 열매의 과육 부분을 어떻게 벗겨내어 제거하는가에 따라 구분한 것이다. 과육을 루왁이 먹고 배출한 것이 루왁 커피라면, 와인(Wine) 가공은 그야말로 와인 닮그듯 몇 달을 과육과 과육안에 있는 씨(생두)를 함께 발효시킨 후에 씨앗인 생두를 골라낸 것이다.

왼쪽 와인(Wine)이 가장 오랫동안 과육과 생두를 같이 둔 경우이며 오른쪽 풀워시(Full Washed)가 수확하자마자 과육을 없애고 말린 것이다.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갈수록 빨리 과육을 없앤 것이다. 커피의 품종과 해당 지역에서 생산되는 커피 열매의 특성에 따라 다양한 방법으로 시도하면서 최상의 커피 맛을 내려고 노력한다.  © 이창현

 

앞에서 언급한 것과 같이 발리의 커피는 중남미나 아프리카 등에 비해 가격경쟁력이 약하고, 생두의 품질 또한 최고 수준은 아니다. 제주도의 3배 크기인 발리의 여러 지역에서 커피가 생산되지만, 관광객이 많은 우붓의 높은 산기슭 지역인 낀따마니 커피가 가장 유명한 이유는 이 지역에서 관광객들에게 특별한 경험과 추억을 함께 판매하고 있기 때문이며, 생산과 판매라는 선순환 과정을 거쳐 지속해서 품질을 높여왔기 때문이다. 

 

▲ (좌))낀따마니에 있는 지역에서 꽤 유명한 농장주가 커피협회에서 인증받은 것을 자랑하고 있다. 인도네시아 스페셜티 커피 조합에서 인증한 것으로 자바, 플로레스, 수마트라, 발리, 빠뿌아, 술라웨시 지역이 참여하고 있다는 표식이다.

(우)이 농장주의 주요 고객은 일본인과 대만인이다. 사진은 그 바이어들이 가져온 선물인 사케 등 자국산 술이다. 바이어들은 자국민들이 선호하는 방식으로 요청하여 제작 주문을 하기도 한다. 즉 커피라는 기호품이 사람마다 다르기도 하지만, 특정 민족이나 종족이 먹는 음식 등에 따라 선호유형이 달라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 이창현


그리고 많은 다양한 나라에서 온 손님들의 취향에 맞게 끊임없이 자체적으로 혹은 외부의 조력을 받아 품질을 개선하고 있다. 그 결과 현재 상당 수준으로 마니아층을 확보하고 있다. 외부의 조력을 받는 부분은 다음에 기회가 닿으면 자세히 소개하겠지만, 몇 명의 헌신적이고 천재적인 예술가들에 의해 창조된 상품들 –발리 유리와 나무 공예 등 – 이 많다.

 

▲ 발리 우붓 지역에서 출발한 ‘유리와 나무’ 공예. 관광객으로 왔다가, 발리 우붓에 정착한 한 외국인 예술가와 현지인이 합작하여 만들었다고 한다. 오늘날 우붓 지역의 대표 상품의 하나가 되었다.  © 이창현

 

다음 회에는 술라웨시의 토라자(Toraja) 커피를 소개하려고 한다. 토라자 커피는 일본인들이 만들다시피 한 것으로 세계적인 반열의 우수 커피이다. 비록 약간 시간이 지난 내용이긴 하지만 일본 스타벅스 등 유력 체인에 공급되는 상당 분량의 커피가 바로 토라자 커피였다. 지금도 상당량이 일본으로 독점 공급되고 있다고 한다. 일본인들은 100년을 투자해서 오늘날의 토라자 커피를 만들었다고 말한다. (계속)

 

이창현

언론학박사, 한국경제문화연구원 글로벌 비즈니스위원장

인도네시아에서 4년간 주재원으로 근무하면서 인도네시아 농어촌 마을의 산업화를 위한 일촌일품(一村一品) 사업을 지원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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