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뮤니티

KECI 칼럼

[김종철 칼럼] 해군 OCS 창설 74주년 행사를 마치고

이세훈

view : 259

지난 7월 13일 서울 해군호텔에서 많은 동문들과 해군관련 단체 그리고 유관기관의 성원과 후원으로 해군 OCS(Officer Candidate School) 창설 74주년 기념 및 영전동문 축하행사를 을 무사히 마쳤다. 폭우 쏟아지는 날씨에도 불구하고 먼 거리를 걸어 참석하시거나 또는 일정상참석하지는 못했지만 성원과 후원을 해주신 모든 분과 단체에 감사를 표한다.

 

해군 OCS는 일제로부터 해방되고 대한민국이라는 국가가 만들어지지 전 사회불안과 혼란의 시기에 바다를 지켜야만 강토가 있고 강토가 있는 곳에 조국이 있다는 조국애와, 오대양을 지켜야만 평화가 있고 평화가 있는 곳에 자유가 있다는 평화 · 자유정신으로 경남 진해 해사대학(해군사관학교 전신)에서 1948년 6월 29일 특별교육대(약칭 특교대)가 설치되어 1기생 선배  74명이 입교함으로서 창설 되었다. 

 

그해 9월 1일 입교한 선배 34명이 임관하여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에 공헌하기 시작했다, 임관 인원이 적은 이유는 필자 생각으로는 일제로부터 독립하고 자유 민주주의 국가를 세우는 과정에서 많은 혼란이 초래되고 온갖 방해공작이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후 1954년까지 매년 3~4개 기수가 임관하여 대한민국 최대의 위기인 6.25전쟁에 참여하여 많은 공헌을 하였다. 이후 해군 OCS는 자주 국방과 국가 위기시마다 2~4개 기수를 선발 · 임관 시키다가 2007년부터 정기적으로 매년 2개 기수를 산발하여 임관 시키고 있다. 

 

현재까지 약 24,000명의 동문이 현역에서 국가 안보를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또한 전역 후에는 정계, 교육계, 재계, 종교계 등에서 많은 노력과 해군 OCS이라는 명예로 근무하여 고위층까지 진출한 분들도 많다. 이번 정부와 6월 1일 지방선거에도 많은 선배들이 당선 및 영전 하시어 대한민국의 발전을 위해 노력 하시는 분들이 많다.

 

해군 OCS 동문 중에는 2대 해군 참모총장을 역임하신 박옥규 참모총장님(5기)과 4대 이용운 참모총장님(6기)은 6, 25전쟁 전 · 후 대한민국의  최대 위기 시 전력을 다해 해군 건설에 각고(刻苦)의 노력을 하였으며 특히 해군 초대 항공대장을 역임하신 조경연 중령은 최초의 해상 항공기 해취호 등 제작하여 운용함으로서 대한민국 항공기 역사에 큰 획을 만들었다.  

 

어떤 조직도 아픔이 있기 마련이다, 해군 OCS도 74년이라는 기간 속에 많은 아픔이 있었다. 그 중 몇 가지를 소개하면 먼저 인천상륙작전을 성공으로 이끌게 한 고 임병래 중위이다. 

 

임병래 중위는 1922년 평안남도 용강군에서 태어나 6, 25전쟁 직전 1950년 4월 20일 해군 OCS 9기로 임관하여 해군 정보국 창설요원으로 선발되어 근무 중 인천상륙작전을 위해 정보활동 후 퇴출과정에서 북한군 1개대대 병력을 맞이하여 동료들은 퇴출시키고 본인과 홍시욱 이등병조(하사)는 수집한 정보내용과 인천상륙작전의 성공을 위해 과감하게 권총으로 자결함으로서 인천상륙작전을 성공 시키는데 엄청난 기여를 했다. 

 

임병래 중위 외에도 해군 OCS 장교로 대한민국을 위해 순직한 선 ·후배가 많다 산불진화 대민지원을 위해 출동하여 순직한 선배, 야간 연합 해상 대잠작전 중 순지직한 후배 무월광기 대잠작전 중 순직한 후배 등 결코 해군 OCS의 역사와 함께 잊지 말아야할 것이다. 

 

이제 74년의 역사를 가진 해군 OCS는 선배들의 숭고한 뜻 대한민국을 위해, 자유 민주주의를 위해, 정의를 위해, 바다를 위해, 사랑을 위해 그 의미를 가슴에 새기며 자기에게 주어진 업무와 임무를 완벽하게 수행하는 것으로 대한민국 안보의 초석이 되어야 한다. 

 

해군 OCS여 영원하라

가자 바다로 지키자 이 바다 생명을 다해 

적에게는 강력하게 국민에게는 편안하게

 

김종철

해군 OCS 장교 중앙회 대외협력국장

한국군사문제연구원  예비역 연구위원

 

※외부 필진의 기고·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먼저 비밀번호를 입력하여 주세요.

창닫기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