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계석칼럼] 세계에 이토록 백성을 사랑한 왕이 있었을까?
이세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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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들 교과서 보다 공연으로 만나야
물. 공기. 일상의 밥상을 대하듯 우리와 뗄 수 없는 한글. 그 창제의 흐름을 좇아가면서 내심 부끄러웠다. 우리가 ‘훈민정음’을 얼마나 알고 있을까? 세계의 어느 왕이 백성을 위해 눈병을 앓아가며 연구의 연구를 몰두한 사례가 또 있을까? 아니 왕권을 세자에 맡기면서까지 발화한 창조성의 근원이 무엇인가? 다름 아닌 애민(愛民) 이었다.
▲ K-Classic 제공 © musictak |
필자는 그간의 칸타타 ‘조국의 혼’, ‘동방의 빛’, ‘코리아 판타지’를 하면서 우리 민족의 경로를 섭렵했다. 그러다 왜 세종대왕의 훈민정음 같은 위대한 작품성에 손대지 않을까에 의구심이 갔다. 물론 영화나 드라마에선 다루어졌다지만, 감동을 줄 수 있는 합창 양식에 담지 못한 것을 발견했다.
때마침 전해 오는 한류의 세종학당 한글학교 소식이나 한글이 제2외국어 세계 8위권에 올랐다는 기사들은 작업 중에 큰 힘이 되었다. 작품 제안을 수용해 준 윤의중 예술감독과 꼼꼼하게 공을 들인 작곡가에게 깊은 감사를 전한다.
UN 발표로 우리가 올해 선진국에 진입했다. 이제는 선진국을 선망하고 배우기만 하던 시대를 지났다. 당당하게 우리가 인류의 미래에 뉴 노멀(New Normal)을 제사해야 한다. 그 첫째가 소통이고 그래서 탁월한 문자의 효용성이 빛을 발하는 때가 온 것 같다. 앞으로는 영어를 대신해 세계의 학자들이 최고의 문자로 찬사를 보낸 한글로 소통하고, 더 넓은 지구촌에서 물처럼, 공기처럼 우리말이 사용될 것이라 확신한다.
합창 서사시 ‘훈민정음’은 백성을 사랑하셨던 ‘King Sejong’의 홍익인간의 높은 뜻이기도 하다. 우리가 어렸을 적엔 큰 바위 얼굴이라 하여 외국의 존경하는 인물을 표상으로 삼았지만 이제는 우리에게 이토록 큰 바위 얼굴이 있었음을 알려야 한다. 그 브랜드 가치와 활용성을 후손들이 높이는 것이 한류의 정점이 될 것이다.
바야흐로 훈민정음 반포 575년 전의 정치, 문화가 멀티버스, AI 과학정신으로 다시 르네상스 하는 시대가 도래(到來)했다. 세종대왕의 창조 정신이 부활하고, 진정으로 백성을 사랑하는 왕의 시대도 함께 왔으면 한다.
탁계석 예술비평가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