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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인 칼럼] “웬 쥐가 이리 많습니까?”

이세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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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솝(Aesop)의 우화 가운데 이런 이야기가 있다.

 

"제우스(Zeus)는 프로메테우스(Prometheus)에게 사람과 짐승을 만들라고 지시했다. 그런데 프로메테우스는 사람은 조금만 만들고 짐승은 훨씬 많이 만들었다가 제우스에게 질책과 함께 사람을 더 만들라는 지시를 받았다. 이에 ​프로메테우스는 새로이 사람을 더 만든 것이 아니라 이미 만들어놓은 짐승들 중 일부에게 사람의 거죽을 씌워 사람으로 개조해 놓았다." 

 

이것이 프로메테우스의 실수였다.

 

그 후 세상에는 원래 짐승이었지만 거죽만 사람의 모습을 한 사람과, 원래부터 사람이었던 사람이 섞여 살게 되었다고 한다.

 

우리나라 개화기인 1908년에 소설가 ‘안국선(安國善)’이 출간한 ‘금수회의록(禽獸會議錄)’이라는 신소설이 있다.

 

이 금수회의록은 소설 속에 등장하는 짐승들을 통하여 인간사회의 모순과 비리를 풍자한 우화소설로서 소설 속 주인공이 어느 날 꿈속에서 우연히 '금수회의소'를 찾게 되는데 그곳에서 쥐, 까마귀, 여우, 개구리, 개, 파리 등이 인간의 잘못을 꾸짖는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는 내용이다.

 

▲ 안국선의 신소설 ‘금수회의록’ 표지 초판

 

이 소설은 앞서 소개한 이솝의 우화에서 프로메테우스에 의해 만들어진 짐승들이 인간의 탈을 쓰고 인간행세를 하는 정도가 아니라, 다수의 짐승이 세상을 지배하고 상대적으로 소수인 인간을 꾸짖기까지 하는 모습을 풍자함으로 기원전 6세기에 살았던 그리스의 전설적 인물인 이솝의 우화와 20세기 초반에 지은 우리의 신소설이 일맥상통의 묘(妙)를 보여주는 것 같다.

​요즘 대한민국은 마치 거대한 '짐승의 우리'와 같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언론계를 비롯하여 종교인, 교육자, 연예인, 심지어는 내 주변에 함께 살아가는 지인에 이르기까지 각계각층의 인간들이 짐승 본연의 모습은 '탈' 뒤에 감춘 채 미친 망나니 춤을 추고 있는 것이 작금의 현실이다.

 

특히 정치인들의 모습은 그야말로 목불인견(目不忍見)이다. 

 

일자리를 찾지 못해 노심초사하는 국민들에게 지금은 생사를 목전에 둔, 실로 전시(戰時)나 다름없다. 이렇듯 국민은 생계의 수단인 일자리를 잃고 시름에 빠져 살지만, 하루도 늦지 않게 급여를 받고, 상여금 퇴직금은 물론 평생 연금을 받으며, 퇴직 후에도 재주 좋은 자들은 재직 시 영향력을 행사하던 공기관으로 옮겨가 평생 보장된 삶을 사는 부류가 바로 정치 공직자들이다.

공직자는 세금에 의한 녹봉(祿俸)으로 살아가는 국민의 공복이다. 그럼에도 도탄에 빠진 국민의 삶은 도외시한 채 당리당략과 자신의 유익만을 추구하는 이기주의적 행위는 물론 온갖 비리에 의한 부정축재, 권력 남용, 여·야간의 모함과 투기, 국민을 상대로 뻔뻔하게 늘어놓는 거짓말 등, 후안무치한 정치인들의 언행은 결코 인간으로 대접받을 수 없는 모습이다.

 

짐승들은 먹는 것에 대한 욕심에 남의 먹이를 빼앗기는 해도, 조직적인 권력 남용에 의한 부정축재나 교묘한 거짓말은 할 줄 모른다. 그렇다면 이들이야말로 짐승보다 더 사악한 존재들이 아닐까? 

대한민국은 그야말로 총체적 위기 상황이다.

 

“난세(亂世)에 영웅이 난다”는 말이있다.

 

이처럼 나라가 위기 상황에 처하면 국민은 이를 즉시 해결할 수 있는 영웅을 원한다. 그러나 정치권을 통틀어 영웅은커녕 쥐들만 득실거리는 현실을 개탄하지 않을 수 없다.  

 

또한 앞서 국민은 이런 쥐들을 박멸할 수 있는 영웅을 기대하며 윤 정권을 선택했으나 현재까지 보여주는 새 대통령의 모습은 지지자가 바라는 영웅본색(英雄本色)에 미치지 못하는 데 대한 실망으로 혼란이 야기되고 있다. 

 

나라의 주인이 사는 국회가 온통 범죄 소굴이라는 말도 있다. 거기 모여서 진짜 주인인 국민을 우습게 여기며 겁도 없이 제멋대로 해 먹는다. 

 

정치인들이 입에 달고 사는 ‘민주주의’란 한마디로 말하면 국민이 주인이고 대통령 이하 모든 공직자는 공복, 즉 종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어쩐지 그 주종의 위치가 바뀐 듯하다.

 

마치 사무엘 베케트(Samuel Beckett)의 부조리-극(不條理-劇) “고도(Godot)를 기다리며”에서, ‘고도’라는 존재가 어떤 의미인지도 모르는 채 연극이 끝날 때까지 등장하지 않는 미지의 대상을 “내일은 꼭 온다”는 소년 전령(傳令)의 전갈만 믿고 기다리는 것 같이....., 이렇듯 진정한 민주주의는 아마도 끝내 오지 않을 신기루에 불과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나라 안에 웬 쥐가 이리도 많은가?

 

대한민국은 짐승의 우리다.​ 이 우리 속에서 영혼없는 짐승들이 인간의 탈을 쓴 채 선량한 인간을 속이고, 공격하고, 짐승으로 양육시키는 등 천인공노할 만행을 저지르고 있다.​

 

어쩌다 세상이 이렇게 되었는가? 

어쩌다 이 시대를 이런 짐승들과 함께 살게 되었는가?

프로메테우스의 결정적 실수가 실감되는 때이다.

 

오늘은 김광림 작시, 변훈 작곡 우리가곡 《쥐》를 소개하고자 한다.​


이 곡은​ 작곡가 변훈이​ 1981년 포루투칼 대사를 마지막으로 28년간의 외교관 생활에 종지부를 찍고 본격적인 작곡의 길에 들어선 후 이듬해인 1982년에 작곡한 노래이다.

온갖​ 허언과 비방, 모략이 난무하고 약탈과 비리가 횡행하던 시절, 이런 정치 현실에 대한 인식을 '쥐'라는 상징적 대상을 통해 풍자적으로 형상화한 작품이다.​

그런데 오늘 불현듯 이 시와 노래가 생각난다. 이는 우리나라 정치권에 인간의 탈을 쓴 쥐​ 같은 짐승들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옛날 초등학교 시절 수시로 실시하던​ ‘범국민 쥐잡기 운동’을 다시 부활시켜야 할 듯하다.

 

《쥐》

​“하나님 / 어쩌자고 / 이런 것도 만드셨지요

야음을 타고 / 살살 파괴하고 / 잽싸게 약탈하고 / 병폐를 마구 / 살포하고 다니다가

이제는 기막힌 번식으로 / 백주에까지 설치고 다니는 / 웬 쥐가 이리​ 많습니까

사방에서 / 갉아대는 소리가 들립니다 / 연신 헐뜯고 / 야단치는 소란이 / 만발해 있습니다

남을 괴롭히는 것이 / 즐거운 세상을 / 살고 싶도록 죽고 싶어 / 죽고 싶도록 살고 싶어

이러다간 / 나도 모르는 어느 사이에 / 교활한 이빨과 / 얄미운 눈깔을 한 / 쥐가 되어가겠지요

하나님 / 정말입니다

하나님 / 정말입니다

정말입니다​”

 

 

김광림 시 / 변훈 작곡, 우리가곡 '쥐'  노래 : 바리톤 윤치호

 

변훈이 작곡한 가곡 중에서 ​‘명태’가 바리톤 오현명의 노래라면 ‘쥐’는 단연 바리톤 윤치호의 노래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바리톤 윤치호는 2007년에 이미 고인이 되었지만 이 노래로 다시 살아나 오늘날 인간에게 해악을 끼치는 쥐 같은 인간들을​ 만드신 하나님께 원망어린 하소연을 하고 있는 듯하다.

 

강 인

예술평론가사단법인 카프코리아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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