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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인 칼럼] 몸집 큰 사내의 울음

이세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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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릉숲 크낙새/ 나무 쪼는 소리에/ 그는 새삼 제 속 텅 빈 곳을/ 들여다보았다/ 빛이 드는 창가에서/ 오래도록 그는 침묵이었다

 

그 누구의 것도 되지 못한/ 그 속에서 크낙새가 콕콕/ 그의 일 초 일 초를/ 쪼아내고 있었다/ 부리 부딪는 소리가/ 손목에서 톡톡 뛰었다

 

톱밥처럼 날아가 쌓인 시간/ 그 더미에서 생목 냄새가/ 뭉실뭉실 피어올라/ 그를 감쌌다/ 그가 숨을 깊이 들이쉬자/ 그의 목숨을 잡아주던 줄들이/ 팽팽해졌다/ 그는 숨줄을 고르고/ 어둠과 빛 속을 갈마들며/ 활을 문질렀다숨어있던 울음이 터져 나왔다/ 나직이 울던 그는 그제야/ 제 속 텅 빈 곳이/ 제 둥지임을 알았다/ 크낙새알 같은 온음표 한 알/ 따습게 생의 마지막 마디에/ 품고 싶었다”

 

▲ 제목 <콘트라베이스> 시, 그림 이윤호 작

 

이 사내의 이름은 ‘콘트라베이스(Contrabass)’입니다. 몸집은 우둔하리만치 큽니다. 그리고 몸집이 큰 만큼 소리의 무게도 꽤 나갑니다. 

 

그가 저음(低音)으로 노래하기 시작하면  밝게 지저귀던 개똥지빠귀 새도 잠시 깃을 접고 가슴이 서늘한 채로 있습니다. 

 

또한 그의 노래는거대한배가 내뿜는 고동 소리 같아 작은 섬 전체를 슬픔으로 휩싸이게 합니다.  

 

몸집이 큰 이 사내는 웬만해서는 좀처럼 울지 않습니다. 덩치값을 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한번 울음을 터뜨리면 연민스럽게도 그것이 더 큰 서러움으로 와 닿습니다. 

 

오늘 무엇이 그리 서러웠는지.....  이 사내가 드디어 울음을 터뜨리기 시작했습니다. 나도 이 사내의 울음소리를 듣노라니 무언가가 가슴에 복바쳐 어느새 함께 울고 있습니다.

 

아일랜드 민요인 ‘대니 보이(Danny Boy)'는 그 큰 몸집의 사내가 흐느끼는 소리를 전해주고 있습니다.

 

함께 들어보실까요? 

 

콘트라베이스(Contrabass)의 거장 게리 카(Gary Karr)와 파이프 오르간(Pipe Organ)  하몬 리바이스(Harmon Lewis)가 연주합니다.

 

 

▲ 아일랜드 민요인 ‘대니 보이’, 콘트라베이스 게리 카, 파이프 오르간 하몬 리바이스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고있는 이 대니 보이는 우리에게 '아! 목동아'로 번역되어 알려진 노래인데 '대니(Danny)’는 '다니엘(Daniel)‘이라는 이름의 애칭입니다. 

 

원곡은 19세기 중엽부터 북 아일랜드의 오래된 항구 도시인 런던 데리 주에서 불리던 '런던 데리 에어(London Derry Air)’라는 사랑의 노래였습니다. 

 

그후 1913년 영국의 '프레데릭 에드워드 웨드리(Frederic E. Weatherly)‘가 대니 보이라는 제목으로 가사를 다시 쓰고 아일랜드 출신의 명 테너 '존 맥코맥(John McComack)’이 불러 세계적으로 유명한 노래가 되었습니다. 

 

그동안 이 곡을 리메이크(Remake) 해서 부른 가수가 전 세계적으로 250여 명이나 될 정도로 널리 애창되고 있지만, 역시 이 곡은 흑인 색소폰 연주자인 '실 오스틴(Sil Austin)‘의 연주가 가장 유명하지 않나 여겨집니다. 

 

우리말로 번역된 가사입니다. 

  

<아! 목동아>

아, 목동들의 피리소리 들은산골짝마다 울려 나오고 

여름은 가고 꽃은 떨어지니 너도 가고 또 나도 가야지 

저 목장에는 여름철이 오고 산골짝마다 눈이 덮여도 

나 항상 오래 여기 살리라 아 목동아, 아 목동아내 사랑아 

 

이 곡을 연주한 '게리 카(Gary Karr)’는 콘트라베이스 연주자로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세계적인 대 비르투오조(Virtuoso) 입니다. 

  

1941년 로스앤젤레스에서 태어난 게리 카는 7대 조상에 이르기까지 전통적으로 콘트라베이스 연주자로 대물림했던 까닭에 더더욱 큰 명성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마치 첼로의 음색과 같이 자유자재로 연주하는 게리 카의 모습은 거장이 아니고는 불가능한 경지로 여겨집니다. 

 

지난 1984년 내한했을 때 우리나라 모 교향악단의 콘트라베이스 연주자는 그의 연주에 충격을 받은 나머지 카나다 까지 따라가서 연주기법을 배웠다는 일화도 있습니다. 

 

풍부한 감정과 중후한 선율로 가슴 깊숙히 파고드는 그의 연주는 특히 저음을 좋아하는 이 들의 심금을 한껏 울려주고 있습니다. 

 

필자는 어언 3년 반 만에 LA에 가서 2주간을 보낸 후 내일 다시 서울로 떠나기에 앞서 오늘은 하루종일 집에서 손주들과 함께 지냈습니다. 

 

물론 내가 가장 사랑하는 손주들과 함께 지내는 것이 더없이 행복했습니다. 그런데 오늘따라 마음 한구석에 스며드는 쓸쓸함은 무엇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다 보니 문득 '콘트라베이스' 라는 악기가 생각났습니다. 평소에 그리 가깝게 접하지 않던 악기인데 오늘따라 그 음악이 듣고 싶어졌습니다. 

 

너무나 그 울림이 좋았습니다. 서러움에 때로는 흐느끼듯, 때로는 통곡하는듯한 울림이 퍽 감동적이었습니다. 아니, 듣고 있노라니 어느새 나 자신이 그 악기가 되어 함께 흐느끼고 있었습니다. 

 

왜, 손주들과 함께하면서  쓸쓸함을 느끼는가?

왜, 즐거워야 할 시간에 서러움에 우는듯한 애절한 울림이 내 마음을 사로잡는가?

 

눈에 밟힌다’는 표현이 무색하리만큼 한시도 잊지 못하던 내 사랑하는 손자, 손녀를 두고 내일 아침이면 다시 떠나야 하는 아쉬움 때문일까?

 

아니면 세상과도 바꿀 수 없는 손주들을 뒤로하고, 먼지 풀풀 날리는 문화예술 황무지에 가서 귀에 못을 치고 사는 문외한(門外漢)들과 다시 섞여야 하는 부담감 때문일까?

 

곰곰이 생각하다가 결국은 나이 탓이라 결론을 짓고 마음을 추슬렀지만, 밤이 늦도록 이 노래의 한 구절이 내 마음에서 떠나지 않습니다.

 

“저 목장에는 여름철이 오고 산골짝마다 눈이 덮여도나 항상 오래 여기 살리라 아 목동아, 아 목동아 내 사랑아.....” 

 

강인

예술평론가 사단법인 카프코리아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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