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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랜드 박사의 맛 이야기] 커피 편 (1)

이세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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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에는 수많은 이야기가 함께 있다. 우선 커피와 관련된 단어를 떠 올려보자. 스타벅스, 원두, 커피콩, 로스팅, 커피잔, 역사, 아프리카, 에티오피아, 이탈리아, 아라비카, 다방, 카페, 데이트, 친구, 대화, 향, 맛, 편안함, 검은색 등 각자의 기억에 따라 떠오르는 단어의 순서가 다를 수도 있겠지만 대부분 위의 단어들을 연상한다는 것에 동의할 것이다. 

 

그런데 필자에게는 위에 나열하지 않은 몇 개의 다른 단어가 더 있다. 바로 루왁, 케이샤, 인간의 감각, 마케팅, 브랜드, 농장, 스페셜티 커피(Specialty Coffee) 등이다.

먼저 스페셜티 커피부터 소개하려고 한다. 필자가 이 커피를 알게 된 것은 우연이었다. 

 

2018년도 중반에 인도네시아 커피 수출 조합(AEKI-아에끼라고 읽는다)에서 시연한 인도네시아산 좋은 품질의 커피들에 대한 커핑(cupping)을 경험하고 나서다. 

 

커핑이란 커피 원두의 품질을 평가하는 국제적 공통의 커피 테스트 방법이다. 커피 콩을 볶고 난뒤 경과한 시간, 물의 온도와 접촉하는 시간 등에 따라 맛과 향이 달라지기 때문에 규격화된 방법을 사용한다. 커핑을 통해 필자가 커피를 올바르게 이해할 수 있도록 가르쳐 주면서, 인도네시아 커피들의 다양성과 그 화려함을 보여 준 것이다. 맛의 신천지를 발견한 셈이다.

 

참고로 여기서 말하는 맛이란 인간의 혀로 느끼는 미각 그 자체로 독립된 것이 아니다. 여기서 맛이란 미각을 기본으로 하되, 후각, 촉각, 시각, 청각에다 인간의 기억과 상상력이라는 다양한 감각 및 수용기관을 총동원해서 느낄 수 있는 것을 의미하는데, 이론적으로는 미각과 후각, 촉각의 상호연관성이 좀 더 강하다.

  

커핑을 통해 필자는 인도네시아가 지리적으로 얼마나 크고 넓고 다양한지를 좀 더 깊이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참고로 당시 필자는 한국의 기업들을 지원하기 위해 4년 임기의 주재원으로 근무 중이었다. 필자가 인도네시아의 크기를 설명할 때, 항상 하는 비유는 인구와 영토의 크기 2개다.

 

인도네시아와 그 이웃 나라인 말레이시아를 혼동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인도네시아는 인구수가 2.8억으로 세계 4위이다. 수도 자카르타와 인근의 인구만 약 3천만이며 이 인구는 말레이시아 전체 인구수와 비슷하다. 한국에서 인도네시아까지의 거리는 약 5,200km이고 비행기로 7시간 걸리는데, 인도네시아의 동쪽 끝에서 서쪽 끝까지의 거리가 약 5,100km이다. 

 

스페셜티 커피란 미국에 본부를 둔 민간 인증기관인 스페셜티 커피 협회(SCA : Specialty Coffee Association)에서 정한 기준에 따라 커피를 평가하여 인증해 주는 것인데, 마치 맛집의 대명사인 미슐랭 가이드처럼 민간에서 자체의 기준으로 평가하는 것이다. 스페셜티 커피 인증을 받으려면 먼저 하나의 품종으로 단일 지역에서 생산되어야 한다.

 

이것을 우리나라에서 사과를 평가에 적용한다면, 청주와 봉화, 문경, 예산, 강릉에서 생산된 부사사과 한 품종을 기준으로 5개 지역 간 사과의 맛과 품질 등을 비교 평가하는 것이다. 스페셜티 커피라는 인증을 받기 위한 원두는 하나의 지역에서 생산된 하나의 품종이어야 한다. 그래서 대부분의 좋은 커피에는 원산지 명이 붙어 있다. 

 

그리고 아라비카 품종의 하부 품종이어야 한다. 커피에는 크게 아라비카와 로부스타라는 품종이 있는데, 로부스타 품종에는 파인(Fine)이라는 다른 인증을 부여한다. 커피도 와인과 마찬가지로 대중적인 상품의 경우 2~3가지 품종을 섞어 향미를 돋우거나 원가를 절감하는 방법을 쓰기도 하는데, 그런 경우는 스페셜티 커피가 될 수 없다.

 

필자의 커피와의 인연은 인도네시아 커피 생산 조합들을 공식적으로 지원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업무차 들른 발리(Bali)의 생산 조합에서 만난 발리의 공무원은 친근하게 나에게 다가와서 이것저것 묻더니 슬쩍 한국과 대만, 일본 3개국을 비교하면서 한국에 대해서 이렇게 평가했다.

 

“한국인들은 사진을 찍는 것을 좋아하는 것 같다. 대만 사람들은 와서 실질적인 성과를 창출해서 우리가 매우 고맙게 생각한다. 대만의 한 전문가는 이곳에 4년간 머물면서 우리에게 모든 것을 가르쳐 줬다. 우리가 한국에 바라는 것은 바로 대만 사람들처럼 실질적인 성과를 가져다주는 것이다”

 

이 말을 듣고는 부끄러움과 나름대로 오기가 생겨 지원 방법에 관한 공부를 좀 더 깊이 하기로 마음먹었다. 당시만 해도 내가 커피에 대해서 아는 것이라고는 한국에서 마시던 봉지커피(믹스커피)와 이탈리아에서 근무할 때 가끔 마셨던 에스쁘레소(espresso)가 전부였다. 물론 그 전에 분말로 된 인스턴트 커피를 마셨지만, 그 내용물은 봉지커피와 거의 같았으니 따로 언급할 필요는 없겠다.

 

▲ (루왁이 커피 열매의 겉 부분인 체리를 먹고 난 뒤 속 부분을 소화하지 못하고 대변으로 내보낸 모습이다. 비가 와서 깨끗하게 씻겼다)  © 이창현

 

발리 방문 후에 인도네시아어를 익혀 간단한 의사소통이 가능해지면서부터 인도네시아 산골 커피농장 등을 찾아다니며 커피 농업에 대해서 알아보게 되었다. 세상에서 가장 귀하고 비싸다는 루왁 커피(Kopi Luwak - 인도네시아 표기로 커피를 Kopi로 쓴다)에 대해서도 관심 두게 되었고, 오솔길에서 루왁 커피콩을 줍고, 말리고, 씻고, 또 말리고 하면서 인도네시아 커피에 대해서 이해를 넓혀 가게 되었다.

 

사실 루왁은 큰 고양이 크기의 야생 짐승이다. 커피 농사를 짓는 농부들에게는 아주 해로운 짐승이다. 전체 수확량의 10%~20% 정도를 먹어 치운단다. 커피는 산골 농부들의 거의 유일한 환금작물로 커피 수확 철이면 여기저기 동네마다 결혼식이 벌어진다. 농부들에게 얼마나 소중한 작물인지 짐작할 수 있다. 그런데 사향고양이 루왁이 다 먹어 치우면 얼마나 가슴이 아플까?

 

그리고 농부들이 어떤 커피를 언제 수확하는지를 옆에서 구경하고 묻고 보기도 했다. 때로는 흰 눈처럼 온산이 하얗게 덮여 있는 향기로운 커피 농원을 거닐며 찐한 커피 꽃 향기에 취하기도 하고, 때로는 붉게 익은 콩을 함께 따기도 했다.

 

▲ 커피열매: 붉게 잘 익었다. 붉은 부분을 체리라고 한다.  © 이창현

 

스페셜티 커피를 마시면서 광활한 인도네시아의 다양하고 넓은 떼루아(와인용어에서 출발했다. 해당 땅의 풍미를 느낄 수 있다는 뜻이다)를 맛 볼 수 있게 된 것은 크나 큰 행운이었다.

 

인도네시아 커피 전문가들의 입에서 떼루아라는 용어가 나온 그 순간 나는 이탈리아에서 근무할 때 와인 공부를 할 때가 생각났다. 이탈리아에서 일하려면 말보다 와인을 먼저 공부해야 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중요한 일이라 벼락치기로 와인을 공부한 적이 있는데, 당시 다양한 와인 관련 용어를 익히느라 힘들었던 기억이 있다. 업무차 찾아간 와인 농장 주인은 와인을 팔면 포도를 파는 것보다 몇 배의 부가가치가 있다고 말했다. 그래서 다들 와인을 만들어 팔고, 와인의 품질을 높이려 노력하고 있다고 했다. 커피를 와인처럼 고가로 팔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스쳐 알아보니 커피의 맛 테스트가 바로 와인의 맛 테스트에서 왔다고 했다.

 

▲ 커피 꽃: 품종과 지역에 따라 개화 시기가 다르다. 단 2~3일만 만개한다. 매 주말마다 등산 겸 커피 농장을 트레킹하는 사람에게도 커피 꽃이 온 천지에 만발한 모습을 보는 것은 운이 따라야 한다.  © 이창현

  

와인처럼 커피의 품질을 높이고, 원산지에 대해서 스토리 텔링을 하며, 지역 브랜드와 국가 브랜드를 입혀 다른 나라 소비자들에게 직접 팔 수 있다면 이 나라 농민들을 실질적으로 지원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내가 담당하고 있는 업무를 더 잘 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이 들었다. 인도네시아 농민들의 실질적인 삶이 향상되지 않는다면, 나의 업무상 목표는 무의미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한국 대기업들의 도움을 받아 인도네시아 커피 조합들을 지원할 수 있도록 나름대로 최선의 노력을 다했다. 그리고 이 글은 쓰는 것도 그 작업의 연속선상에 있는 것이다.

 

그리고 앞으로 연재할 이 글이 우리나라의 창의적인 신산업 개발에도 적용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예컨대 세계적으로도 유명한 고가의 차(Tea) 회사인 TWG는 차잎 하나 생산되지 않는 싱가포르에 기반을 둔 회사이다. 싱가포르는 열대 적도에 있지만 최고 높은 곳이 해발 200미터도 되지 않은 도시국가다. 그러니 차 잎 생산이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은 맛과 향을 가진 찻잎을 선별하고 확보하는 차별화된 품질 역량을 기반으로 고급스런 포장 디자인, 안락한 매장 등으로 브랜드 이미지를 강화할 수 있는 오브제를 활용하여 최고의 차 판매 회사가 되었다. 

 

미국에서 마케팅 전문가들이 스페셜티 커피 협회를 조직해 커피 평가 체계를 만들어 운영하고 있는 것처럼, 우리도 우리나라와 동아시아인들의 입맛에 맞는 평가 체계를 만들어 운영한다면 많은 기회가 있을 법도 하다. 우리나라도 커피를 하우스에서 재배하기도 하는데 중장기적인 마케팅 전략하에서 개발한다면 미래가 밝을 것으로 생각된다.

 

사실 루왁 커피란 우리나라 커피협회 회장의 말처럼 아주 귀한 것은 맞으나 맛에 호불호가 갈리는 것도 사실이다. 앞에서도 간단히 언급했지만 루왁이라는 인도네시아 지역에 사는 야생 사향고양이가 커피 생두의 체리를 먹고 난 뒤에 소화하지 못한 생두를 변으로 배출한 것을 말리고 씻어 만든 것이 바로 루왁 커피다. 자연산이 있고, 인위적으로 사향고양이를 우리에 키우면서 생산한 것이 있고, 가짜가 있다. 이 루왁 커피에 대해서는 다음 회에 자세히 소개하도록 하겠다.

(계속)

 

이창현  

언론학박사

한국경제문화연구원 글로벌비즈니스위원장

 

※외부필진의 칼럼 및 기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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