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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인 칼럼] 입은 재앙을 불러들이는 문이다

이세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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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신체에서 중심 부위는 어딜까?

 

이는 얼굴에 있다. 입과 코 사이에 오목하게 골이 진 곳, 바로 ‘인중’이다. 문자 그대로 인중(人中)이 ‘사람의 중심’이다.

 

사람의 육신은 무엇인가를 받아들여야 생명을 유지할 수 있다. 즉 입으로는 음식물을, 코로는 공기 중의 산소를 계속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그런데 입으로 받아들이는 음식물은 땅(地)의 기(氣)를 받고 자란 것이므로 ‘지기(地氣)’라 하고, 코로 받아들이는 산소는 하늘의 기를 받고 생성된 것이므로 ‘천기(天氣)’라 한다.

 

이렇듯 '지기'를 섭취하는 '입'과 '천기'를 흡입하는 '코' 사이에 있는 부위가 바로 '인중'인 것이다. 이 부위가 인중이라는 이름으로 사람의 중심이 된 이유는 지기와 천기의 중간이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사람의 몸에는 열려있는 지체(肢體)가 일반적으로 여섯 곳이 있다. 인중 위로 세 곳, 인중 아래로 세 곳이다. 인중 위로 코와 귀와 눈이 있고 인중 아래로는 입과 요도와 항문이 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인중 위에 있는 코와 귀와 눈은 각기 두 개씩인데 비해 인중 아래 입과 요도와 항문은 각기 한 개씩이다.

 

동양의 상수학(象數學)에서 '2(둘)'라는 숫자는 '음(陰)'을 상징하고 '1(하나)'이라는 숫자는 '양(陽)'을 상징한다. 

 

짐작컨대 '음'을 상징하는 코는 산소를 많이 흡입하고, 귀는 듣기를 열심히 하고, 눈은 많은 것을 살펴보라고 두 개씩 만들었고, ‘양’을 상징하는 입과 요도와 항문은 늘 절제하고 조심해야 한다는 뜻으로 한 개씩 만든 것이리라.

 

필자는 이렇듯 열려있는 지체 중 양(陽)을 상징하는 입에 대해 집중적으로 이야기하고자 한다.

 

입은 인중 아래로 ‘양’이 시작되는 지점이다. 이는 달리 표현하면 인간 만사가 입에서부터 시작된다는 의미이다.

 

입은 음식물 즉 ‘지기’를 섭취하는 유익한 지체이지만 '화(禍)'가 드나드는 문(門)이기도 하다. “화는 입에서 나오고 병은 입으로 들어간다(禍自口出 病自口入)”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몸에 생기는 병은 입으로 먹은 음식 때문이고, 화를 입는 건 입으로 내뱉은 말 때문이라는 것이다.

 

중국의 역사 중 꽤나 주목할만한 불세출(不世出)의 재상(宰相)이 한사람 있다. 바로 풍도(馮道 882~957)라는 인물이다. 그는 당나라 멸망 이후 후기(後期) 당나라 시대, 다섯 왕조에 걸쳐 여덟 개의 성을 가진 열한 명의 임금을 섬긴 처세의 달인으로 알려진 인물이다. 

 

그가 중국 이십오사(二十五史) 중의 하나인 전당서(全唐書)의 설시편(舌詩編)에 다음과 같은 유명한 시를 남겼다.

 

口是禍之門(구시화지문) / 입은 재앙을 불러들이는 문이요

舌是斬身刀(설시참신도) / 혀는 몸을 베는 칼이로다

閉口深藏舌(폐구심장설) / 입을 닫고 혀를 깊이 감추면

安身處處牢(안신처처뢰) / 가는 곳마다 몸이 편하리라

 

그가 27년간이나 재상으로 일한 비법(祕法)이 ‘입에서 나오는 말을 조심하는 것’이었다.

 

“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다”는 속담이 있다. 그러나 이 속담을 깊이 생각하면 말의 힘이 그만큼 강력하기 때문에 조심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칼에는 두 개의 날이 있지만 사람의 입에는 백 개의 날이 있다”는 베트남 속담이나 “말이 입 속에 있을 때는 당신의 노예이지만, 입 밖에 나오게 되면 당신의 주인이 된다”는 유대인 속담도 말 때문에 설화(舌禍)를 입는 경우를 일깨워주고 있다.

 

요즘 우리나라는 대선(大選)을 앞두고 전례(前例)없는 혼탁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

 

거짓말, 음해성(陰害性) 발언, 가짜뉴스, 섹스스캔들, 부동산투기 의혹, 살해 의혹, 뇌물수수 의혹, 상스러운 욕설 등등… 더 이상 구체적인 사례(事例)에 대한 언급은 생략하려 한다, 

 

이렇듯 막장 드라마 같은 현실을 바라보노라면 과연 정치가 이다지도 추하고 더러운 것인가 하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아무튼 이 모두가 입에서 나오는 말 때문이다.

 

그런데 이러한 네거티브(Negative)성 말의 정도(程度)가 점입가경(漸入佳境)이다. 선거일이 다가올수록 상대방에 대한 음해의 내용은 더욱 추해지고, 그것을 폭로하는 말소리는 부끄러움을 모른 채 점점 높아져 간다.

 

마치 오물로 가득 찬 쓰레기통을 연상케 한다.

 

누가 선출되든, 온갖 오물이 쌓인 쓰레기통에서 피어난 꽃이 어찌 아름답고 향기로울 수 있으며 꽃으로서의 역할을 감당할 수 있겠는가? 그 속에서 태어난 자에게서 무엇을 기대하겠는가?

 

혀로 칼춤을 추면 혹자는 시원함을 느낄 수도 있다. 그렇다고 그들이 지지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지지(支持)란 낮고 차분한 어조(語調)지만 설득력있는 대화로 주의(主義), 정책(政策),의견(意見) 등의 공감대가 형성될 때 뜻을 같이하는 것을 말한다.

 

그런데도 지난 1월 31일 밤 예정되었던 양대 후보의 공식(公式) 대면 토론은 ‘토론주제’, ‘자료지참 문제’ 등의 납득하기 어려운 이유로 결렬되고, 막후(幕後)에서 확인되지 않은 비난의 목소리만 난무(亂舞)하고 있어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 없다.

 

오늘은 한 해가 시작되는 첫날인 우리민족 고유의 설 명절이다.

 

언젠가 읽었던 글 중에 “설”이란 말의 어원(語源) 풀이가 생각난다. 유래되었다는 몇 가지 설의 의미(意味) 중에 특히 관심이 가는 한 가지 내용은 ‘사리다’라는 옛말에서 유래했다는 설(說)이다. 

 

즉, ‘몸을 사리듯 말을 삼가 조심하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결국 설날은 한마디로 ‘말조심하는 날’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하다.

 

이는 앞서 언급한바, 과거 풍도의 처세 비법인 “입에서 나오는 말을 조심하라”는 교훈과 일맥상통(一脈相通)함을 발견할 수 있다.

 

‘입은 재앙을 불러들이는 문이다. (口是禍之門 / 구시화지문)’

 

이 말은 국가의 대업(大業)인 대통령선거가 1개월여 앞으로 다가온 시점에서 또 한 번 설을 맞으며, 후보자 및 정치인은 물론이고 모든 국민이 마음에 새기고 실천해야 할 금언(金言)이라 할 것이다.

 

풍도(馮道)의 가르침이 어느 때보다 소중한 시기다.

 

강인 예술평론가, 사단법인 카프코리아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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